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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Nov 04. 2023

눈썹 문신의 기쁨과 슬픔

살면서 정말 잘한 몇 가지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스무 살 때부터의 독립이다. 스무 살 때 경제적으로는 반만 독립했으나 물리적으로는 부모님과 완전히 독립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덕에 지금 정도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부장적이고 유교 질서가 분명한 부모님께 스무 살의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딸의 모습이었을 거다. 이십 대 초반, 대구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11시 전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도어록을 잠가 버린 그런 부모님이다. 그러므로 한 번도, 그 어떤 일을 서울에서 겪었어도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선택지에 두지 않았다.


물론 그 선택지는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테지만, 그런 마음과 별개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평행 우주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아쉬움이 든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세상. 그 평행 우주의 내가 겪었을 경험들, 감정들. 부모님과 함께 사는 평행 우주를 떠올린 건 바로 눈썹 문신 때문이었다.


하루는 오랜만에 대구를 갔는데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자마자 빵 터지고 말았다. 두 분 다 짱구 눈썹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썹이 대체 와 그라노. 아 아빠랑 눈썹 문신 같이 하러 갔다. 왜 이상하나. 둘이 서로 눈 위에 매직으로 죽 죽 그어준 것 같았다. 나름 알아본 데다 돈을 들인 거라 대놓고 깔깔 거리며 웃진 못했지만, 충분히 웃겼다.


분명 웃겼는데.. 문득 약간 슬퍼졌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아주 자연스러운 눈썹 문신이 유행이다. 눈썹 문신을 하지 않는 나도 안다. 요즘은 죽죽 진하게 채우는 눈썹보다 눈썹 머리와 눈썹의 결을 살려 한 줄 한 줄 그려내는 눈썹 문신이 유행이다. 만약 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다면. 엄마는 내게 늘 그렇듯 눈썹 문신을 알아봐 달라고 했겠지. 그럼 나는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알아봐 줬겠지. 조금 트렌디하고 과하지 않은, 짱구 눈썹을 만들지 않을 그런 곳으로 예약까지 해줬겠지.


어쩌면 같이 갔을지도 모른다. 툴툴거리면서도 가서 내가 나서 상담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김에 나도 뭐 하나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두 분 다 지금 짱구 눈썹을 하고 있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까지 미치자 처음으로 떨어져 사는 것에 미안함과 서운함이 들었다. 굉장히 낯선 감정이라 나조차도 내가 낯설다.


어느 때부터 이런 순간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나이가 드는 걸까. 이런 적도 있다. 날씨 좋은 주말, 혼자 한강에서 달리기를 마치고 편의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사람이 북적인 탓에 혼자 앉아 있던 내 테이블에 어떤 아저씨 한 분도 혼자 자리를 잡았다. 운동을 끝내고 혼자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막걸리를 드셨다. 우리 아빠도 저렇게 낮에 집안일을 하고 나서 혼자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만약 우리가 같이 살았다면 아빠와 나는 어떤 주말 낮엔 함께 운동을 하고 함께 낮술을 마셨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괜히 또 서운하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 아빠의 옅어진 눈썹처럼 그때 든 감정도 옅어졌다. 앞으로도 가끔 평행 우주를 떠올리고 때론 속상함을, 때론 슬픔을 느낄 거다. 또 그 감정들은 옅어질 테고. 1년에 명절을 포함해 부모님 집에 서너 번 정도를 갈까. 부모님의 남은 기대 수명을 생각하면 앞으로 엄마 아빠의 집에 몇 번이나 가게 될까. 중요한 건 내 세계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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