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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Nov 12. 2023

선유도의 냄새

선유도를 좋아하는 이유를 32348개 정도 댈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선유도의 냄새다. 동네에 냄새가 나면 무슨 냄새가 나냐 하겠지만 선유도엔 종종 진짜로 좋은 냄새가 흐른다. 선유도의 냄새를 처음 맡던 그날, 동화 같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2017년. 겨우내 선유도로 이사했다. 아직 직전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묘한 설렘과 아쉬움이 희미하게 남아 있던 즈음, 취직을 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 가까이 더 좁고 그러나 더 비싼 집으로 이사를 마쳤다. 스무 살, 지방에서 올라와 강북과 종로 어드매에서만 7년을 살았기 때문에 그 외의 동네들은 모두 낯설었다. 선유도도 마찬가지였다. 잘 알지 못하는 동네. 완전 회사 가까이는 너무 비싸 차선으로 선택했던 동네. 동네를 잘 알아보고 할 시간도 없이 - 아니 애초에 원룸 월세에 길게 살 마음이 없었기에 대충 가격과 시기가 맞아 이사 온 동네였다. 처음 이사 오던 날. 텅 빈 좁은 정사각형 방의 맨바닥에 매트리스도 없이 이불을 놓던 순간 우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스산한 겨울에 이사해 우울감은 배가 됐다.


허리를 잔뜩 말아 잠든 다음 날, 출근을 했다. 그 전의 집에선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간 다음 광화문역에 내려 사람들에게 치이며 지하철을 타고 30분 가까이 가야 했다. 도어투 도어로 1시간 가까이 걸리던 통근 길이 새로 이사한 집에선 버스 한 방이면 15분 만에 도착할 만큼 짧아졌다. 그전 집에선 출근보다 퇴근이 더 최악이었다. 지하철 몇 대를 보내고 탄 적도 많았다. 집에 들어오면 진이 빠졌다. 새로 이사한 집 역시 출근보다 퇴근이 더 기가 막혔다. 무려 회사 앞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춥고 좁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는데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정도만에 하차 벨을 누를 땐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버스 문이 열리자 옷을 여미고 발을 아래로 내딛는데, 순간 코 안으로 달달한 향이 훅 끼쳤다. 으잉? 지나가던 사람의 향수인가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발 내딛는 곳마다 달콤한 냄새가 흘렀다. 횡단보도를 건너도 마트 앞을 걸어도 온 동네에 냄새가 났다. 청포도 향 같기도 하고 풍선껌 같기도 하던 향. 동네 전체에 달콤한 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동화 같았다.


알고 보니 선유도에는 롯데 음료와 롯데 제과 등 롯데 계열의 다양한 식음료 공장이 자리해 있어 온갖 달달한 향이 동네 전체에 자주 퍼진단다. 이후에도 동네에 냄새가 흘렀다. 주로 퇴근길이나 주말 저녁 산책길에 달달한 냄새가 풍겼는데 마치 거대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동네에 발을 들인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서늘하고 스산하게만 느껴졌던 동네가 단박에 따뜻하고 달콤한 동화 속 동네로 변했다. 이름도 선유도야. 신선이 자유로이 놀러 다닌다는 선유.


2년 뒤 재정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네에 가게 됐을 때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동네의 냄새였다. 유흥가가 즐비해 거리엔 취객들의 술 냄새와 담배 냄새,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다. 다시 4년이 흐르고 꾸역꾸역 다시 선유도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선유도의 냄새 때문이다. 요즘도 고된 퇴근길, 아쉬운 주말의 저녁 산책길에 달콤한 동네의 냄새를 맡으며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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