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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r 03. 2024

영락없는 엄마 아빠 딸

이번 주말엔 대구에 내려갔다. 설에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려 애인과 같이 내려갔다. 역시나, 우리 엄마 도착하기 전에 전화가 한 번, 도착하기 1시간 전쯤 또 한 번, 30분 전에도 한 번. 우리 엄마 아빠는 걱정도 참 많고 뭐든 빠릿빠릿해야 한다.


한국에서 결혼은 두 집안이 만나는 일이랬나. 결혼을 앞둔 요즘 양쪽 집안과 교류가 많은데, 가족 문화라거나 성격이라거나 이런 게 너무 다른데 그게 또 빤하게 보여 웃기고 재밌다. 우리 부모님을 보면 나는 정말 영락없는 우리 엄마 아빠 딸이다.


예를 들면 나의 성격은 대략 이렇다. 해외여행을 갈 때 공항에 3시간 전엔 도착해야겠지? 그럼 버스가 1시간 반 걸린다 치면 넉넉하게 2시간을 잡고, 그런데 혹시 나가다가 늦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으니 버스 시간으로부터 2시간 반 전에 나가고 어쩌고 하다 보면 비행기 시간 4시간은 더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사람이 나다. 


우리 엄마 아빠도 똑같다. 일이 있으면 전날 잠도 잘 못 자고 당일엔 새벽부터 일어나 서두른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치워야 속이 편하다. 걱정도, 불안도 많다. 내 성격이 어디서 왔나, 당연히 알고는 있었다만 이번에도 직접 눈으로 보고 겪으니 너무 웃기다. 아 내 모습도 저렇겠구나. (물론 나보다 좀 더 심하다)


그에 반해 애인은 굉장히 느긋하다. 연애하고 초기엔 어떻게 저렇게 느긋할 수 있지? 생각했을 정도로 느긋하다. 뭐, 상대적인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내 성격에 비해선 많이 느긋하다. 덕분에 나도 걱정이나 불안을 좀 많이 놓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저렇게 살아도 다 살아지네'를 바로 옆에서 보기 때문이다.


애인과 함께 지내면서 내 성격이 느긋해진 걸 난 일종의 테라피처럼 느낀다. 좀 더 느긋해도, 괜찮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애인의 부모님을 뵙고 나니 애인의 성격도 어디서 왔는지 너무 알 거 같았다. 물론 그도 나를 만나고 많이 배웠단다. 삶은 가끔 느긋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다른 성격이 상호보완 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걸 깨닫고 나니, 결혼 선배인 엄마 아빠의 성격이 더 세밀하게 보인다. 똑같이 걱정이 많고 빠릿빠릿하지만 각자의 역할이 또 있다. 걱정 많은 엄마를 비교적 조금 느긋하고 신중한 아빠가 중심을 잡아 준다. 표현을 잘 못하고 가끔 뚱한 아빠가 기울어지면 다정한 엄마가 중심을 잡는다. 엄마 아빠가 웃기고 귀여워지다니 나도 이제 진짜 나이가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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