팤팤이 써지다니. 세종대왕 만세다
브랜딩과 마케팅 업무를 하게 되면서 좀 더 신중해졌다. 길을 가다 회사가 각각 다른 전기 모빌리티에 어떤 광고 태그가 붙어 있는지, 앱을 켰을 때 어떤 식의 UX라이팅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지, 카카오톡에서 브랜드 채널을 추가했을 때 그들이 뿌리는 쿠폰을 어떤 프로세스로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을 찬찬히 살펴본다. 더불어 ‘평가’에도 신중해졌다.
예전엔 ‘대중교통 타 GO! 환경도 지키GO!’ 따위의 공공기관 캐치프레이즈를 보며 이들은 왜 이렇게 한글을 영어 단어로 적는 걸 좋아하냐며 살짝 비웃기도 했다. GOGO! ㅋ!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이 한 단어, 한 줄을 떠올려 내느라 그들도 머리가 한 뭉터기는 빠졌으리라. 조금 의아해 보이는 마케팅 한 줄도, 오바 같이 보이는 UX 말 걸기도, 체감상 공인인증서 발급 수준인 쿠폰 사용 방법에도 너그러워졌다. 그들도 정말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에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 있다. 목동에 있는 회사 인근은 요즘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공사 가림막에 잔뜩 적혀 있는 영어 - 업그레이드며 업데이트며 하는 것들은 별 생각이 없다. 내 눈길을 끊임없이 붙잡아두는 건 바로 이 문장이다.
“Park Park한 도시에 여유를 끼얹는 공원을 짓고 있어요!”
이 문장은 공원 리모델링 공사 가림막에 적혀 있다. 가령 대중교통 타go! 환경도 지키go!에는 ‘go’라는 의미,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자 라는 의미를 음차한 것이기에 말 그대로 우리 함께 대중교통을 타 환경을 지키자는 뜻이다. 외국어 음차는 아무렇게나 쓰이지 않는다. 단어와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음차한 단어의 뜻이 일관적으로 한 방향을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조금 비웃었을지라도) 저 문장의 의미를 부정적 간섭 없이 곧바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팤팤한 도시란. Park Park한 도시란 다시 말해 공원이 많은 도시란 의미가 아닌가? 비슷한 용례로 (차음은 아니지만) ‘초록초록한 도시’라는 표현은 도시에 나무와 식물이 많아 싱그럽다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므로 비슷한 원리로 ’파크 파크한 도시‘라고 했을 때 우린 공원이 많은 도시를 떠올리기 쉽다. 공원이라는 뜻의 park를 왜 ‘팍팍하다’라는 한국어와 연결시켰을까. 이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 여기는 (공원이 없는) 팍팍한 도시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 팍팍한 도시에는 여유를 주는 공원 공원(park park)가 필요하다는 의도였겠지.
왜 하필 긍정적 이미지인 공원을 팍팍함과 연결했을까. 단어의 긍정 부정 의미를 떠나서라도 전혀 의미가 통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두 단어를 왜 붙였을까.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 나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을 노려봤다. 아! 실은, 이미 이 도시는 파크파크하게 공원이 많은데 다만 여유가 있는 공원은 없어 공원에 여유를 끼얹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팤팤한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거다. 또한 ‘여유를 끼얹는 공원‘이 아닌 ‘공원에 여유를 끼얹는/또는 끼얹기 위해’처럼 공사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수식어를 사용했을 거다.
물론.. 이 과정도 쉽지 않았겠지.
만 왜 굳이 영어를 써 가면서까지 문장을 지었을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잘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어 표기가 남발하는 시대에 팍팍하기 그지없는 문장이다. 팤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