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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pr 14. 2024

어른이 돼도 모르는 게 있네

멘토링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자라던 시기에는 나쁜 어른들도 가끔 있었지만 더 기억에 남는 건 좋은 어른들이었다. 나와 친구를 영화관에 데려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던 미술 과외 선생님.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도 20대 젊은 대학원생이었을 뿐인데. 집안이 급격히 어려워지자 학원비를 몰래 깎아 주셨던 논술 학원 원장 선생님.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고 늘 생각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 말과 행동 때문에 용기를 얻고 눈물을 닦기도 한다. 가라앉고 있던 삶의 의지와 목표가 다시 건져 올려지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선생님 같은 대단한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인생에서 만나는 한 명의 아이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쳐 가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멘토링으로 처음 만난 친구는 수줍음이 많았다. 이곳에 자세히 옮겨 적을 순 없지만 학교 생활에 힘듦을 겪고 있다. 나와 친구 사이 강산이 두 번 변할 정도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고민했다. 중학생 시절도, 고등학생 시절도 지금의 내겐 너무 까마득하니까. 아이가 느끼기에 알맹이 없는 공감처럼 느껴지진 않을지, 아이 입장에서 얼토당토않은 뻔한 조언을 하진 않을지, 그 거리가 우주만큼이나 넓게 느껴지진 않을지. 


이런저런 말을 모두 소거하고 나니, 정말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내 말에 자신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소용없을까 봐. 한참 고민하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겪은 비슷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중반이 되어서 나는 사과를 받았다고. 어른이 되면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는 건 별일이 아니게 된다고. 하지만 사과를 받아도 그 상처가 지워지진 않았다고.


말수가 적은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잘 꺼낸 게 맞을까, 조금은 후회했다. 자기 말만 떠드는 어른, 내 경험과 감정은 사소한 거라고 취급하는 어른,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라고 대책 없이 말하는 많은 어른들을 아이 시절에 얼마나 많이 겪어 왔는가.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떤 어른이 돼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와의 시간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던 아이를 보며 다시 우주를 떠올리게 된다. 정말로 나는 잘하고 싶다. 멘토링이 끝날 때쯤엔 우리 둘의 거리가 강 하나 정도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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