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 가평 어딘가로 캠핑을 다녀왔다. 주로 애인과 둘이 가지만 이번 캠핑은 친한 친구와 그 친구의 애인과 함께 한 캠핑이었다. 가기 전 서로 장비 리스트와 장보기 메뉴를 함께 공유하며 무얼 해먹을지 떠들었다. 도착한 캠핑장은 넓고 한적했다. 낮엔 햇빛이 나뭇잎들 사이로 스며들어 따스했고 그늘막 텐트 아래에선 충분히 시원했다.
눈 돌리는 곳마다 초록이 가득하다. 꽃은 아름답게 피고 나무들은 크레파스로 죽죽 그은 듯 온통 진한 녹색이 푸르렀다. 친구가 준비한 스키야끼도 맛있었고 내가 사 온 브라운 에일도 기가 막혔다. 휴대폰과 TV 같은 온갖 도파민에서 벗어난 하루는 참 길다.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좋은 음악을 들으며 한갓지게 자연을 한껏 눈에 담는다. 아, 진짜 행복하다.
노지 캠핑이 컨셉인 곳이라 비록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매번 5분가량 등산을 해야 했지만, 이것쯤이야 건강을 위한 산책이다. 애인과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도, 가만히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문득 눈이 마주친 친구에게도 계속해서 말했다. 계속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이거면 되겠다고. 무해한 수다를 떨다 보드게임을 펼쳐 놓고 그러다 저녁을 차려 먹고. 다음날 아침 산책을 하고 근처에서 맛있는 두부전골을 먹고 맛있는 커피를 먹고. 오랜만에 충만함을 느꼈다. 이런 삶이라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친구들과 애인과 오래오래 이렇게 살고 싶다고.
집에 있을 때 강박적으로 어디든 쓸고 닦는 내게, 무언가 늘 흐트러져 있고 지저분함이 디폴트인 캠핑은 오히려 해방구다. 발에 모래가 좀 묻으면 어때. 씻지도 않고 침낭에 좀 들어가면 어때. 때론 그 흐트러짐이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 느낀다.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마저도.
아- 글을 쓰다 보니 또 캠핑을 떠나고 싶다. 캠핑을 떠나기에 너무 축복받은 계절이다. 이번엔 파도치는 푸른 동해 바다 앞에 텐트를 치고 앉아 책을 읽고 싶다.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옆에 두고서 몇 모금씩 홀짝이다 잠깐 잠에 들고 싶다. 해가 내려앉을 즈음 늘 분홍색이 되는 동해의 하늘을 바라보며 산책하고 싶다. 뒤돌아 울산바위를 보며 든든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해거름이 지나고 나면 맛있는 회를 먹어야지. 그렇게 또 삶의 충만함을 느껴야지.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