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알고 보면 모두 다른 날들

2. 당신은 어떤 삶을 꿈꿨나요?

by 윤혜린

삶을 어렵게만 사는 나는 자주 다짐한다. ‘너무 애쓰지 말자.’ 주위에서 아무리 “쉽게 생각해.”, “좀 가벼워져봐.” 충고해도 돌아서면 또 열심히. 나는 뛰면서 사는 법밖에 배우지 못했다. 그런 내게 육아는 갑작스런 쉼이었었다.


스물여섯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나는 새로운 소속을 찾지 못 했다. 가족에게 면목이 없고, 사람들 눈총이 따가웠다. 청춘의 삶이 죽을 만큼 무거웠다. 취업 준비생으로 3년을 보내고, 별로 이룬 것 없이 결혼을 했다.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난 이제 뭘 하지?’ 물었다. 아직 나의 길을 찾지 못 했는데, 나이만 먹었다. 아이는 반짝였지만, 나를 영영 잃을까 두려웠다. 충분한 삶이 나는 언제나 부족했다.

- 윤혜린, 《엄마의 책장》, 사과나무, 2020, 182쪽


2002 월드컵 함성 속에서 입시를 치렀다. 독일과 준결승전이 열리던 날, 상암 경기장을 가득 채운 ‘꿈을 이루어진다’라는 말에 가슴이 뜨거웠다. 하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고, 재수를 한 뒤에도 내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 했다. 꿈을 꾸라고, 그러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어른들의 거짓 동화일까. 입시, 취업, 시험 등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나는 나를 안아주지 못 했다. 오히려 나를 타인 대하듯 혹독하게 내몰고, ‘네가 그 모양이지.’ 뒤돌아섰다. 사회적 성공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누구나 원하는 돈과 명예가 보장된 삶.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내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북콘서트에 모인 이들에게 “어떤 삶을 꿈꿨나요? 힘들었던 인생의 순간이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앞에 앉아있던 여성 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행복한 삶을 꿈꿨어요. 저도 입시, 취업, 육아의 시기가 힘들었어요.” 다음은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던 이가 말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힘들었어요. 자유에서 멀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어떤 삶도 꿈꾸지 않았다는 이의 이야기도 들었다. “꿈을 찾는 게 참 어려웠어요. 사실 지금도 이 길이 맞을까 의문이 계속 들어요.” 문득 니코스 카잔찬키스의 묘비명의 떠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인간은 언제부터 꿈꾸기 시작했을까. 백 년 전 한국만 해도 대부분 태어난 대로 살았다. ‘개인’이라는 말조차 근대화와 함께 서구에서 들어온 것이니, ‘나’를 토대로 발견하는 꿈 또한 오래되지 않았다. 내 부모 세대도 운명이 꿈을 앞섰다. 장녀로 태어나 열여섯부터 미싱을 돌리고, 가난한 집 차남으로 태어나 대학은 못 가는, 당연한 인생. 배곯지 않기 위해 벌어야 하는 삶 말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달랐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꿈’이라 불리는 ‘장래희망’을 수없이 적었다. 나 또한 보통 여자 아이처럼 간호사와 교사를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다. (선택할 직업의 폭이 가끔 병원에서 보는 간호사와 매일 보는 학교 선생님밖에 없었다.) 차라리 꿈꾸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면, 삶이 조금은 수월했을까.



Photo by Randy Taramp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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