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알고 보면 모두 다른 날들
3. 멀리서, 외롭게 나를 사랑한 남자
내 아버지 나이쯤 되었을까. 나이 지긋한 남자 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열심히 살았어요.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았는데, 노후가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됐어요. 오히려 지금은 가족에게 짐이 되었죠. 참 미안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입을 열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그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만약 그분을 다시 만나면 이 말을 해도 될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일부러 그런 것 아니잖아요.”
나는 젊은 날의 내 아버지가 때때로 내 가엾은 아들처럼 느껴진다.
- 김훈, 〈광야를 달리는 말〉, 《라면을 끓이며》, 문학동네, 2015, 30쪽
스무 살 지나며 아버지가 너무 버거웠다. 통학 두 시간 거리인 학교를 다니는데 귀가 시간이 9시인 것도,(지킨 적은 별로 없다.) “너 핸드폰을 뭐 하러 가지고 다니냐?” 느닷없이 소리치는 것도, 아침마다 가정 예배를 드리고 뒤돌아서 바로 화를 내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가끔 아버지가 없는 밤, 엄마, 동생과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드는 잠은 참 달콤했다. 훌쩍 커버린 나는 아버지가 무섭기보다 무거웠다.
마흔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다시 보였다. 책장에 걸려있는 앵그리버드 열쇠고리, 잔잔히 울려 퍼지는 노라 존스의 노래가 실은 오래된 사랑이었다. 취업 준비하며 궁핍했던 때, 아버지 생신에 앵그리버드 열쇠고리를 선물했다. 얼리어답터 아버지는 앵그리버드 게임을 좋아했고, 빨간 얼굴에 위로 솟은 눈썹과 다부진 입이 귀여웠다. 아버지는 몇 년 동안 자동차 백미러에 그 열쇠고리를 달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늘 화나 있는 그 녀석이 아버지의 책장에 걸려있다. 아버지가 ‘이거 네가 준거잖아. 그래서 여기 걸어놨어.’라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그 마음을 짐작할 뿐. 아버지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옛날 사람이다.
겨울밤, 친정 거실에 ‘Don’t no why’가 깊게 깔렸다. 치킨을 뜯으며 노라 존스의 노래를 듣자니 고급 레스토랑에 온 듯했다. “어, 내가 좋아하는 노라 존스.”라고 말하자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쯤 내가 노라 존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사놓았다고. 썸남이었다면 쿵 심장이 떨려 반할 뻔했다. 아버지는 가장 멀리서, 가장 외롭게 나를 사랑해준 남자였다. 이런 지극한 짝사랑이 또 어디 있을까.
첫째 발표회 날이었다. 늘 그렇듯 사회자는 순서 중간중간 경품을 주었고, 마지막으로 문자 빨리 보내기에 선물을 내걸었다. 나도 인원 안에 들어 앞으로 나갔는데, 춤을 추란다. 막대처럼 서 있다가는 남아서 춤을 또 춰야 했다. 적당히 몸을 흔들었다. (물론 몸치인 관계로 율동 수준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첫째가 말했다. “엄마, 춤추러 나갔을 때 내가 너무 떨렸어.”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아이를 꼭 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덧붙였다. “너 나가는 거 보고 나도 기도했잖아.” 문자 보낸 것을 후회하며 뻣뻣한 팔을 움직이고 있을 때,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참 든든했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고 앞만 보며 뛰던 때가 있었다. 성공해야만 인정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내가 그럴듯한 사람이지 않을 때도 늘 한결같았다. 아이를 낳고 ‘존재 그 자체’라는 말이 더 와 닿았다. 늦은 밤, 잠든 두 아이의 숨결 속에서 ‘네가 거기 있구나. 싫다 혼난다 고맙다 사랑한다 하면서 오늘 하루도 잘 보냈구나.’ 느낀다. 그렇게 서로의 힘이 되어 또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