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 살아있는 마음
prologue
내가 사는 곳은 경기 최북단, 포천 관인이다. 38선 이북으로 위도상 개성보다 위다. 철원 읍내가 포천 시내보다 가까워 사실상 철원 생활권이다. 많은 이들이 철원하면 군대를 떠올리고, 매서운 추위에 몸서리를 친다. 이곳의 겨울은 귀가 떨어져 나간 듯, 발이 사라진 듯 강렬하다. 결혼한 첫해, 10년 만의 강추위가 찾아왔다. 내복에 깔깔이까지 입었지만, 하루 종일 코가 시리고 손끝이 찡했다. 보일러를 몇 시간씩 돌려도 집안의 냉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아무래도 사기 결혼 같아. 이렇게 춥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장난처럼 웃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까마득했다.
철원은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수도였다. 철원 곳곳에 궁예도성 터, 궁예밥상, 태봉로, 태봉한과 같은 흔적이 남아있다. 궁예는 무지개가 뜬 날 태어나 왕을 위협할 것으로 여겨져 버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후 고구려를 세웠으나, 관심법으로 죄 없는 신하, 부인과 아들을 죽였다. 당시 궁예의 폭정에 지친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모인 곳이 바로 관인(官仁)이다. 말 그대로 어진 관리들이 모인 마을이다.
관인은 한탄강 따라 펼쳐진 냉정리 평야를 빼면 대부분 산이다. 전체 인구가 2천8백여 명인데, 그 중 65세 이상이 천 명. 이곳에서 환갑 어른은 청년이다. 초등학교는 두 곳인데, 학생 수를 다 합쳐도 50명이 안 된다. 장례는 한 달 사이 몇 번을 치르는데, 태어나는 아이는 손에 꼽힌다. 관인은 지금 사라지는 중이다. 20년 뒤면 사라질 마을, 사육되는 소와 돼지의 수가 사람보다 많은 곳. 하지만 그곳에서 누군가는 살아간다. 여전히 살아있는 마음이 있다.
Photo by Hyowon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