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30분이 되자, 열 명 남짓 모였다.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했지만,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피어올랐다. 먼저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불렀다. ‘분’, ‘녀’, ‘금’ 같은 글자가 들어간 오래된 이름이 참 고왔다. “오늘 함께 읽을 책이에요.” 윤진현의 ≪고릴라 할머니≫를 펼쳤다. 이 수업을 시작하게 한 책. 발그레한 소녀가 고릴라 할머니가 되는 삶이 너무 내 것 같아 책을 덮으며 눈가가 시렸다. 할머니의 축 처진 가슴과 엉덩이, 구부정한 허리를 보면 늙는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같았다. 자글자글 주름, 거친 피부, 거뭇한 검버섯은 언젠가 내 것이기도 했다.
유치원 다닐 무렵,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나도 너만할 때가 있었는데….” 나는 오목해진 눈으로 되물었다. “할머니가 저만했다고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장난이 너무 심하다 생각했다. 고개를 저으며 엄마에게 갔다. “엄마, 할머니가 나만할 때가 있었대. 진짜야?” 엄마의 답은 더 충격이었다. “엄마도 너만할 때가 있었어.” 옆에 있던 아버지까지 “나도 너만했어.”라고 했을 때, 나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 아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머니로, 엄마는 엄마로 태어난 것이어야 했다.
한참 지나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았다. 웨이브 진 머리에 오뚝한 콧날이 고상했다. 엄마의 결혼 전 사진도 발견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엄마가 소녀 같았다. 문득 엄마가 그 시절이 그리워 나를 떠나면 어쩌지 불안했다. ‘모두 나만할 때가 있었구나.’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8년 전 찍은 결혼사진만 봐도 나와 남편 모두 참 어리다. 첫째 돌 무렵 사진은 “애가 애를 키웠네.” 말할 정도로 지금과 다르다. 누가 봐도 나는 이제 그냥 아줌마. 해는 날마다 내게 주름을 더하고 저물어 간다.
≪고릴라 할머니≫ 책을 열면 면지에 가마 타고 시집가는 새 각시가 나온다. 내가 물었다. “정말 가마 타고 시집 오셨어요?” “그럼, 정말 가마 타고 왔지.” 할머니들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복숭아꽃 같던 얼굴은 잠시뿐이다. 부뚜막에서 밥을 짓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새색시 얼굴은점점 까매진다. 고추 심고, 아이 키우고, 송아지 먹이며 허리는 굽고, 손은 거칠어진다. “정말 그랬어. 아주 똑같네.” 할머니 한 분이 말했다. “옛날엔 정말 송아지 키워서 학비 대고 그랬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