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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Feb 18. 2020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이야기

1. 50년대생 부모, 80년대생 아이 - 김보라 감독 영화 《벌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늘 안개가 낀 듯 뿌옇다. 영화 ‘벌새’를 보며, ‘아, 내가 그때 저런 마음이었구나.’ 내 안의 은희를 만났다. 베이비붐 세대인 50년대생 부모, 다시 베이비붐 세대가 된 80년대생 아이. 따뜻한 집에서 하루 세끼 굶지 않고 살았지만, 마음은 춥고 헛헛했다. 혼나서 발가벗고 문밖에 서 있었던 날,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생각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의 것인 가부장제도는 고스란히 우리의 것이었다.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그 속에서도 삶은 살아졌다. 멀찍이 떨어진 엄마를 목이 터져라 부르던 은희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라는 줄을 겨우 잡고 살았는데, 가끔 엄마가 나를 떠날 것 같았다. 엄마가 지켜야 하는 삶도 무거웠고, 가끔은 내가 귀찮은 듯했다. “넌 공부만 해.” 그 시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열심히 돈을 벌어 아이를 책상에 앉히는 것. 잡채, 불고기, 부침개 같은 고단한 수고가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와 동생도 소 닭 보듯 한 방을 썼다. 가끔 애틋한 친구였지만, 보통 상관없는 이방인이었다. 동생은 내 인생 첫 경쟁자. 동생 때문에 엄마의 사랑은 반토막 났다. 공부, 외모뿐 아니라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 비교당하며 눈을 흘겼다. 내 안에는 은희뿐 아니라, 대현과 수희도 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 안 되면 손을 휘둘렀다. 동생이 내 옷을 몰래 입고, 내 물건을 쓰고, 나에게 욕을 한 것은 잘못이니까. 쉽게 때리고, 할퀴고, 머리채를 잡았다. 둘이 눕기에 빠듯한 방은 날마다 전쟁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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