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사랑받지 못해 허덕였다. 어린 시절, 표현되지 않는 부모의 사랑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이름이 있는 게 이상했다. ‘엄마는 그냥 엄마인데….’ 엄마는 뚝딱 밥을 차리고, 척척 빨래를 하고, 쓱쓱 청소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알았다. 밥을 차리려면 시장부터 봐야 하고, 세탁기가 있어도 빨래를 넣고 개는 것은 사람의 몫이며, 어질러진 집은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사랑임을 그때는 몰랐다. 딸아이가 “엄마는 엄마니까 그러면 안 되잖아.”라며 울었을 때, “엄마도 처음이라 완벽하진 않아.”라며 함께 울었다. 엄마도 한 사람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사랑은, 내가 그렇듯 늘 빈곤하다.
- 윤혜린, 《엄마의 책장》, 211쪽
“어린 시절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라고 물었다. 한 여성 분이 추웠겠다고, 그래도 잘 컸다고 자신을 토닥였다. 순간 그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눈가가 시렸다. 그렇게 ‘어린 나’에게 다가가 “힘들었지. 너 그래도 참 자랐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카프카의 말처럼, 일상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 회사에 가고, 학교에 가고,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는 일상은 사실 모두 다른 날들이다. 더러는 고달퍼 울고, 가끔은 행복에 겨워 웃는다. “일상을 지켜낸 당신은 가장 숭고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다해 말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 남자 분이 말했다. “미국에 있는 누나 생각이 납니다. 타지에서 많이 힘들 거예요. 남동생은 가끔 보는데, 한두 마디 나누고 나면 어색해요.” 실은 사랑이라고, 표현은 못하지만 사랑이라고 말을 이었다. 앎은 빠르고 삶은 더디다. 아는 것만큼 드러내며 살 수 있다면, 삶이 조금은 덜 삭막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느리지만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 언젠가는 전해진다는 것.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자욱한 안개가 낀 것처럼 모호하고 슬펐다.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나만의 것인 줄 알았던 고통이 사실은 보통이었다. 둘째는 체육 특별 활동을 하는 수요일을 싫어한다. 전날 밤, 뱀이 무섭다고 울며 잠들었고, 아침에 일어나 체육 때문에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 뱀은 가짜니까 괜찮다고, 더 씩씩해지는 시간이라고 아이를 위로했다. 아이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질까 봐 무서워.” 여섯 살 아이의 인생도 만만치 않구나 생각했다. 매일 전쟁 치르듯 뛰는 어른의 삶은 어떨까. 이유 없이 욕을 먹고, 알 수 없이 손가락질 당하고, 그럼에도 먹고 살기 위해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우리의 일상.
에세이는 같이 헤매는 글이다. '그렇게 하면 안돼요. 이렇게 하세요.' 가르치는 자기 계발서와는 다르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아픔이 있고, 알게 모르게 묻으며 살아간다. 에세이를 쓰며 쉽게 말하지 못했던 나의 모자람과 아픔을 내보인다. 그럴 듯해 보이는 삶 안에, 사실은 이런 분노와 슬픔이 있다고, 당신만 그런 것 아니라고 손 내민다. 당신 참 좋은 사람이라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본다. 고달프고 외롭지만 우리는 또 그렇게 견디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