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재미는 기대감과 반비례한다.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기생충>도 극찬 속에서 보면 실망하기 쉽다. 피그말리온은 간절히 원해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숨 쉬게 했지만, 내 경우에는 반대였다. 나는 오히려 최악을 떠올리면 편했다. 영화관에 앉아 ‘화재 시 대피 요령’을 볼 때면 ‘정말 불이 나면 어쩌지’ 마음이 쓰였다. 그럴 때는차라리 머릿속에 불이 나서 모두 정신없이 대피하는 그림을 그렸다. 가장 나쁜 상상은 보통 현실이 되지 않았다. 사건은 늘 예상지 못 한 것이니, 불행이 오지 않으려면 잠시 악담을 하는 게 나았다.
칭찬은 고래도 멈추게 한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나는 내 인생을 너무 기대한 나머지, 늘 그에 못 미쳐 허둥댔다. 고3 때, 수능을 앞두고 친구들이 백일 목걸이를 하고 왔다. 그 강렬한 염원에서 나만 빠진 것 같아 초조했다. 집안 형편을 알기에 망설이다 엄마에게 입을 열었다. “다른 애들은 백일 목걸이 하더라. 백일 동안 하고 있으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대.” 엄마는 백일이 이틀 지나, 리본 달린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진작 해줬어야 하는데 미안해.” 물방울 모양 큐빅 펜던트가 예뻤다. 목걸이를 볼 때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목이 뜨거웠다. 하지만 기대의 종착지는 부담, ‘수능 대박’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목걸이를 98일만 해서 그런가.’ 재수할 때는 백일 동안 정성스레 목걸이를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60점짜리 자신에게 “이번에는 운이 나빴던 것뿐이야. 진정한 나는 100점짜리야”라는 말을 들려주는 것이 자기긍정이라네. 반면에 60점짜리 자신을 그대로 60점으로 받아들이고, “100점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라고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수용일세.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260쪽
남편은 운동 신경이 좋다. 운동회 때 달리기 경주를 하면 보통 1, 2등을 했단다. 반면 나는 뒤에서 1, 2등. 남편이 물었다. “나는 탕 신호가 울리기 전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너도 그랬어?” 내가 히죽 웃었다. “꼴찌라고 안 떨리는 건 아니에요. 나도 출발선 앞에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 최선을 다해 손발을 움직이며 기도했다. ‘어쩌면 2등이나 3등은 할지도 몰라. 손에 도장 찍고, 공책도 받을 거야.’ 간절히 바랐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그때 나에게 돌아가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적당히 뛰어. 넌 달리기엔 소질이 없어. 그게 너야. 괜찮아.” 달리기에는 60점인 나를 그대로 인정했다면, 매년 열리는 가을 운동회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달리기뿐 아니라 모든 운동 실력이 형편없다. 구기 종목은 공 줍느라 바쁘고, 춤을 추면 뻣뻣한 막대 느낌이다. 고등학교 때 나는 BC클럽이었다. 체육 실기 평가 종목이 농구, 탁구, 뜀틀, 줄넘기 등 매번 바뀌어도 늘 C, 그러다 좀 괜찮은 건 B인 아이들의 모임이었다. 나는 시간표에 체육이 있는 날 비가 오면 휘파람을 불었다. 50분 동안 운동장에 있다가 벌겋게 익은 얼굴로 들어와 다음 수업을 받노라면 저절로 눈이 감겼다. 반면 졸업 후에 스쿼시, 수영, 요가를 배웠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스쿼시 강사는 “보통 한 달이면 초보자 코스가 끝나는데 좀 오래 걸리네요”라며 웃을 뿐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요가를 할 땐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였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으니, 굳이 100점이 될 필요가 없었다. 진작 내 인생에서 체육을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일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면 잘 풀리는 자기 충족적 예언, 기대감은 정말 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이끌까. 미국 일리노이 주의 호손 웍스(Hawthorne WorJs)라는 공장에서 한 실험을 했다. ‘근로자들이 누군가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생산성은 어떻게 변할까’에 관한 것이었다. 기대감은 작업 능률과 정비례했다. 이른바 ‘호손 효과’. 문득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하루 종일 누군가 나를 기대 어린 눈빛으로 관찰하고 있다면, 생각만으로 머리가 묵직하다. 공개 수업 때, 학부모 몇 분만 뒤에 앉아 있어도 신경이 쓰이는데.
나는 내일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열 마리 고래가 춤을 추다 한 마리만 칭찬을 받으면 나머지 아홉 마리는 멈춘다. 기대도, 칭찬도 접어두고, 있는 그대로의 ‘나’와 ‘너’를 바라본다. “당신,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아요”라고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