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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May 31. 2020

엄마의 자리

"엄마라는 이름이 버거운 당신, 여기 앉으세요."

 “왜 여자만 가슴이 있어요? 아이도 여자가 낳는데, 젖은 남자가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 아이가 물었다.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시간 중이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이 번쩍했다. 결혼 전 나에게 모성은 자궁과 가슴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많은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부업으로 생활비를 보태며 가족을 지켰고 훗날 ‘어머님 은혜’라는 칭송을 들었다.


  내가 집에서 육아만 해야 하는 현실에 묶이니 상황이 달랐다. 두 아이의 사랑은 과분했다. 아이들은 내가 있으면 웃고 없으면 울었다. 내가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든, 내 외모가 어떻든 나를 따랐다. 하지만 매일 씻기고, 먹이고, 달래고, 재우는 일상 속에서 나는 자주 일탈을 꿈꿨다. 은혜는 고사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이토록 매정한 엄마라는 사실에 나는 두 번 울었다.


  육아는 행복하다. 아침에 막 일어난 아이의 선한 웃음, 흥겨운 개다리 춤은 엄마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러나 엄마의 자리는 없었다. 사라진 나의 일상이 너무 당연했다. “남들 다 하는 육아가 나만 왜 이렇게 힘들지?” 남편은 말했다. “세상에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엄마도 안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육아에 답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엄마 탓인 양 무너져 내린 날, ‘괜찮다’며 토닥이는 손길을 기다렸다. 누군가 이곳에 앉아 쉬라며 자리를 내어 주길 바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펼쳤다. 육아, 살림에 지쳐 글을 읽을 만큼의 힘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줄 읽다보면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글을 썼다. 당연한 듯 그 자리에 있던 엄마에 대하여, 나의 멈춘 시간에 대하여. 이제 내가 닦아놓은 자리에 누군가 앉았으면 한다. “엄마라는 이름이 버거운 당신, 여기 앉으세요.”


Photo by Cathal Mac an Bheat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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