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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May 31. 2020

너무나 다른 별

“남자는 결혼해서 밥 해주고 빨래해 줄 엄마 찾는 거잖아.”

1. 결국 감정싸움

     

  주위에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관계가 틀어진 부부가 많다. 싸움의 시작은 술, 돈, 부모, 자녀 등 다양하지만, 끝은 서로에 대한 무시와 경멸로 비슷하다. 글은 문자 그대로 전달되지만, 말은 언어와 함께 비언어적 요소—몸짓, 표정, 분위기, 억양—까지 함께 전한다. 대부분 부부 관계는 이 지점에서 무너진다. 부부 싸움은 종종 주제를 잃은 채 “왜 그런 식으로 말해?”, “소리 지르지 마”, “그 눈빛은 뭔데?”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옮겨 간다. 결국은 감정싸움이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 한다. 나에게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주말 나 홀로 육아이다. 평일에는 비교적 수월한 육아를 하지만, 주말은 반대다. 농부 남편은 토요일에 바쁘다. 못자리, 모내기 같은 여러 일손이 모여야 하는 일은 토요일에 한다. 일요일도 마찬가지인데, 교회 봉사를 하는 남편은 오후 서너 시까지 그곳에 묶여 있다. 함께 교회에 가지만 아이 둘은 언제나 내 몫이다. 어느 날 눌렀던 감정이 터졌다. 친정은 왜 이렇게 멀지, 교회 봉사는 육아 휴직도 없나, 왜 두 아이는 당연히 내 몫일까. 나는 남편에게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며 따졌다. 사실 그를 몰아세울 뿐 뾰족한 답은 없었다.


  얼마 전, 이 문제로 또 흔들렸다. 두 아이가 일요일 아침부터 싸웠다. 눈 뜬 순간부터 눈만 마주치면 누나가 뺏었다고, 동생이 때렸다고 이르고 따졌다. “안은산이 먼저 때렸어.” “누나가 놀렸어.” 현명한 판사 노릇도 한두 번, 매번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헤아리기가 힘에 부쳤다. 둘을 데리고 교회에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했다. 심심하고 시끄러운 아이들은 예배의 경건함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 감정은 대부분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따라 좌우 된다. 감정 반응이 긍정적인 쪽인지 부정적인 쪽인지 결정하는 것은 사건 자체이지만 감정 반응의 구체적 내용과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사건에 대한 개인의 평가이다. - 래리 트랩, 『결혼 건축가』


  니체도 고통은 해석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단순히 고통을 겪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해석된 고통을 앓았다. ‘내 마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고통은 타인에 대한 질책으로 뻗어나갔다. 아무리 간절해도 내 힘만으로 어쩔 도리가 없으면, 인정해야 했다. 내 의지 너머의 것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발버둥 쳐봤자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2.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

     

중국어와 영어가 다르듯이 당신의 사랑의 언어가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와 다를 수 있다. 당신이 영어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당신의 배우자가 중국어만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p. 22)


  남편과 나는 분명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 종종 오해했다. 게리 채프먼은 저마다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다섯 가지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함께하는 시간’이 나의 사랑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함께하는 시간’이 줄거나 없다고 해서 속상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남편이 나에게 상처를 준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부정할 때, 내 잘못을 지적할 때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순간 자존심 때문에 화조차 못 냈지만, 그 작은 균열로 오랫동안 아팠다. 나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었다.


  남편에게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설명하고 어떤 것이 자신의 언어인지 물었더니 단번에 ‘봉사’라고 답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늘 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널어놓은 빨래가 가지런히 소파 위에 놓여 있었다. 아침 먹고 아이 둘 어린이집 보낼 준비에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식탁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는 분담한 집안일은 거르지 않고 매일 최선을 다한다.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나는 남편을 위해 점심을 차리고, 커피를 내리고, 빨래를 하는 것을 사랑의 표현이라 여기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했을 뿐. 대신 나는 이렇게 사랑을 표현했다. “여보, 늘 고마워요.” “얘들아, 아빠 같은 사람은 정말 세상 어디에도 없단다.” 인정하는 말로 그를 격려하고 다른 이들에게 칭찬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이 내 생각만큼 그에게 의미 있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다. 심리학자인 도로시 테노브 박사는 사랑에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결혼한 부부들을 연구해 보니 로맨틱한 사랑에 사로잡힌 기간은 평균 2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p. 37)


  스승의 날 수업 시간에 문학 교수가 말했다. “사실 스승의 은혜 노래에서 스승은 가르친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이걸 듣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어요. 참 된 게 뭐고, 바른 게 뭔지 그걸 안 가르치고 만날 참 되고 바르거라 말만 하면 뭐해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추상적인 말들이 다 그렇다. 사랑, 진리, 평화 같은 말은 구체적으로 풀지 않으면 공허하다. 이 책에서 말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다.


  게리 채프먼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를 시작으로, 자녀, 10대, 싱글, 이혼 등 다른 여러 사례에 대한 책도 출간했다. 모든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같다. 아이에게 적용하면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아이를 칭찬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위해 봉사하고,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는 모든 일이 삶으로 녹아든 사랑의 표현이다.


3.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싱글인 친구가 말했다. “남자는 결혼해서 밥해주고 빨래해줄 엄마 찾는 거잖아.” 그래도 결혼은 해볼 만하다고 할까 하다가 입을 닫았다. 성 상품화, 페미니스트 연예인의 자살 이야기까지 나오면 한국 남자는 벌레가 된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속사정을 알기 전에 쉽게 판단했다.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나에 대한 오해였다. 나는 내가 이렇게 고집 세고 속 좁은 사람인지 몰랐다. 남편만 틀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의 우주가 바닥까지 추락했다 지표를 찾으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갔다. 차갑게 “됐어.”라며 고개 돌리고, 무표정하게 지나쳤던 날들, 소란스런 싸움 속에서 관계는 여물었다.


이러한 사랑은 노력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만일 배우자의 삶이 나의 노력에 의해 풍성해진다면 나 또한 정말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것을 알고, 열심히 배우자의 유익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p. 41)


  남편은 감정에 예민하고, 사람 사이 관계에 신경을 쓰며, 일의 과정에 집중한다. 반면 나는 감정에 둔하고, 관계보다 일을 우선시하며, 과정보다 목표 중심적이다. 우리는 다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남편을 위해 커피를 볶고 내리고, 골뱅이를 무치고, 국수를 삶는다. 몸이 피곤해 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말보다 더 진한 사랑의 표현이다. 연애 시절, 운전하는 남편의 높은 콧날을 보며 ‘잘 생겼네.’ 가슴이 뛰었지만, 이제는 “아빠랑 놀자.”라며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 더 설렌다.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 게리 채프먼,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생명의 말씀사, 2010


Photo by Phil Bot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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