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린 May 31. 2020

나의 부러움, 그의 외로움

육아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보조자, 곁다리

1. 환상의 현실


  “가정은 평안한 곳, 피로를 풀고 자신을 회복하는 곳, 아빠들은 그런 환상을 품고 있다.”(p. 58) 하지만 매일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씻기고, 입히는 육아의 현실은 그런 환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나는 보통 무표정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데…. 당신은 밖에서 일하니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아빠가 되었습니다만』에서 말한다. “직장인이 된 후로 일을 잘하는 것도 당연, 칭찬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되기 위한 훈련”(p. 17)이었다고 말이다.


  남편은 내가 나갈 준비를 하면 아이들 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갈면 물티슈를 가져오고, 집 정리를 시작하면 청소기를 돌린다. 하지만 콩나물을 사오라고 하면, 마트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굵은 콩나물을 용케 사온다. (누군가는 남편에게 콩나물을 사오라고 했는데 숙주를 사왔다고 한다.) “여보, 아이들 옷 좀 입혀줘요.”라며 남편을 믿었다가는 딸은 지퍼를 앞쪽으로 원피스를 입고 있고, 아들은 버릴까 고민하다 넣어놓은 옷을 입고 있다. 여자 눈에 보이는 게, 남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초보 아빠는 이렇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기와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불안의 연속이다. 기저귀를 너무 조였나? 너무 헐겁나? 덥나? 춥나? 왜 울지? 이 시기는 또한 아내와의 의사소통도 어려워진다. 좋아할 줄 알고….”(p. 43) 아기를 어떻게 안을까 이런 저런 자세를 취하는 아빠가 꼭 남편 같았다. ‘어쩜 저렇게 모를까.’ 생각한 것들이 그로서는 최선이었던 셈이다. 나에게는 너무 쉬운 문제가 남편에게는 난제였다.


  뱃속에서 듣던 목소리, 맡던 냄새 속에서 아기는 더 쉬이 잠들었다. 엄마이기에 더 수월했던 것을 남편은 잘 못한다고 여겼다. 모유와 분유 중 무엇을 먹느냐는 엄마와 아기의 애착 정도와 관련이 있다. 아기에게는 곧 생존인 젖이 엄마에게서 나오면 애착은 더 단단해진다. 모유를 먹인 나는 병원 진료를 받은 단 두 번 빼고, 5년 동안 아이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친한 친구 결혼식조차 유모차를 끌고 가서 예식은 보지 못한 채 아기를 안고 음식만 허둥지둥 먹고 나왔다. 책 속의 아내는 한 번도 웃지 않는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버거웠던 때, 나도 남편을 아무 감정 없이 대했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변하는 육아의 나날. 아빠는 괴롭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잊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엄마가 더 힘들다는 것.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엄마를 웃게 하는 게 아빠 역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이 여자와 결혼 한 건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다. (p. 96)


  이 글을 쓰는 지금, 육아는 한 단락 마무리 되었다. 여전히 일상은 반복되지만 빈도는 줄고 정도도 수월하다. 아이는 이제 이유식 대신 밥을 먹고, 함께 누워 잠든다. 울지 않고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스스로 옷을 입는다. 내가 그때 얼마나 메말라 있었고, 남편을 다그쳤는지 이제야 보인다. 8시에 온다는 사람이 5분만 늦어도 화가 났고, 잠시만 앉아 있어도 ‘지금 야구가 문젠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웃는 모습이 좋아 결혼한 남자에게 별로 웃어주지 못했다. 영아 산통으로 새벽에 일어나 우는 아이를 나는 몇 번 토닥이다 포기했지만, 남편은 그래도 지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며 밤새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때 웃으며 고맙다 말했으면 어땠을까.


2. 외로움의 자리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다가 밖에 나갈 때쯤 되니 겨울이었다.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이 TV 화면과 다를 바 없는 따뜻한 감옥 생활. 밖이 춥든 바람이 불든, 가습기와 보일러를 틀어놓은 집은 여름처럼 습하고 따뜻했다. 봄이 되면 유모차를 태워 산책해야지, 가까운 바닷가라도 다녀와야지 상상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줍고, 아픈 뼈를 매만졌다. 하지만 호기롭게 나선 첫 산책,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몸을 뒤틀며 울었고, 남편은 아이 대신 기저귀 가방을 밀었다. 봄이 온줄 알고 꽃잎을 열었다가 까맣게 동사한 목련이 내 마음 같았다. 양양에 가서 “당신이라도 다녀와.”라며 남편 홀로 낙산사에 보내고, 나는 아이를 몇 겹 둘러 안고 잠시 바닷바람을 쐬었다. 우리집을 열 평 남짓 리조트로 옮겨왔을 뿐, “한 입만 더” 사정해서 이유식을 먹이고, “잠깐만” 부탁하며 기저귀를 갈고, 간신히 재워 눕히면 “응애” 눈을 뜨는 같은 일상이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게 다행이라고 한다. 아니면 아빠는 매일 이런 말을 들을 거란다. “엄마 아닌 게 또 왔네.”(p. 31) 아빠는 그저 엄마가 아닌 사람이다. 오롯이 내 것인 엄마의 몫이 무겁고, 한 걸음 떨어진 남편이 부러웠다. 그래도 남편은 문을 닫고 볼 일을 보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깨지 않고 잘 수 있으니 말이다.


육아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보조자, 곁다리 같은 느낌. 왠지 모르게 항상 보상받지 못하는 그 느낌은 뭘까. 아빠가 된다는 건, 아빠가 아니고는 알지 못하는 특유의 ‘행복해서 더 외로움’을 안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p. 116) 


  나의 부러움이 그에게는 외로움이었다. 아빠는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차선이다. 아이들은 산책을 하면 엄마 손을 잡겠다고, 식당에 가면 엄마 옆에 앉겠다고 싸운다. 셋이 한 방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것이 당연해 아빠는 늘 내쫓긴다. 아빠가 녹초가 되도록 비행기를 태워 주고 숨바꼭질하며 놀아 줘도, 밤이 되면 엄마를 찾는다. 첫째가 아빠 침대에 누워 “이 냄새는 뭐지?” 물었다. 베갯잇을 아무리 빨아도 이제 베개 그 자체가 된 안드로스테논 홀아비 냄새는 7년 동안 혼자 지낸 쓸쓸함의 분비물일까. 늦은 밤 홀로 TV를 보는 남편을 보며 ‘만날 피곤해하면서 일찍 자지.’ 생각했지만,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저널리즘 토크쇼 J 하는 날이네. 즐겁게 공부 해요.” 매불쇼를 들으며 최욱 때문에 웃고, ‘유령을 잡아라’의 문근영을 보며, 행복해서 덜 외로웠으면 한다.


- 요시타케 신스케,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온다, 2018


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이전 03화 너무나 다른 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