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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May 31. 2020

육아서에서 길을 잃다

육아서 저자는 정말 그렇게 아이를 키웠을까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떼 부려도, 짜증내고, 지나치게 수줍어해도 다 이해하고 수용하라는 육아 방식이 지배적인지, 왜 아무리 힘들게 해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엄마를 ‘좋은 엄마’로 정의하는지, 왜 훈육을 가르침이 아닌 학대로 생각하는지. - 정유진, 『아이의 떼 거부 고집을 다루다』


  육아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아기를 낳았을까. 어미 개가 젖을 물리듯, 나도 쉽게 젖을 물릴 줄 알았다. 신생아실에서 이미 분유에 익숙해진 아기는 내 젖을 빨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빨아도 나오는 것은 별로 없었을 터, 아기는 울었다. 낮에는 잘 안 먹는 모유를 먹이느라, 밤에는 퉁퉁 부은 가슴에서 젖을 짜느라 나도 울었다. 모유 전쟁은 두 달 만에 나의 승리로 끝났고, 15개월 동안 아기와 나는 한 몸이 되었다.


  아기는 미숙했다. 코도 못 팠고, 자신의 손을 보고 놀랐다. 아기가 킁킁 대면서 우는 이유가 코딱지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소아과에 다녀오고 밤마다 유축기로 콧물을 뺐다. 아기는 언제 자고 일어나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새벽 세 시에 눈을 말똥말똥 떴다. 미숙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곱은 왜 끼지?’, ‘손톱은 어떻게 깍지?’, ‘왜 밤에 울지?’ 사소한 질문에 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사람마다 아기 보는 방식이 다르고,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젖병 세재로 닦지 말고 끓는 물에 삶아라, 애를 바닥에 눕히면 어떻게 하냐, 젖이 부족하니 분유 줘라, 가끔 서로의 방식이 충돌했다. 그때부터 의학 상식 육아서를 읽었다. ‘우는 이유가 뭘까’ 돌 무렵부터는 아이 심리 백과와 아이를 변화 시키는 방법이 담긴 육아서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동기의 경험이 말 그대로 우리 몸속으로 스며들어 뇌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심장혈관 체계, 면역 체계, 신진 대사 체계의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되었다. - 잭 숀코프 박사(하버드대학교 아동발달센터 소장)


  자연 분만을 했고, 모유 수유도 했으니, 마지막 과제는 애착 형성이었다. 아이의 생리적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앎은 부족했고, 몸도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리 달래도 계속 울면 발버둥 치는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자다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경험이 아이의 뇌 발달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무서웠다. 혹시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 나쁘게 작용하지 않을까. 육아라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뒤집기 성공이라는 경이로움도 잠시, 다음 날부터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설거지하다 보면 뒤집어 있고, 빨래하다 보면 뒤집어 있고, 아기를 다시 뒤집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기 시작하면서 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신발을 집 안으로 옮기고, 화분의 흙을 쏟고, 싱크대 안에 있는 그릇을 꺼냈다. 그 무렵 아기는 식탁에서 오감 체험을 시작했는데, 아이 얼굴과 옷은 음식 범벅이 되었다. 나와 남편은 반찬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겨우 밥을 먹었다. 그 무렵 영유아 검진을 갔더니 의사가 밤중 수유를 하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건 아기한테 정말 안 좋아요. 엄마 편하자고 자꾸 물리면 제대로 잠을 못 자요. 키도 안 크고….”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두 돌 무렵, 새로운 문제가 시작됐다. 아이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떼를 썼다. 뽀로로 숟가락을 찾겠다고, 스스로 물을 따르겠다고, 분홍 드레스만 입겠다고, 아침부터 울었다. 육아서는 그럴 때 따뜻하게 달래 주라고 한다.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보는 경험이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고, 그것이 곧 세상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정말이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완전히 쏟아 붓는 일이었다.


  심리 백과에 나온 대로 아이를 존중했다. “그래, 잘 안 되니 속상하겠다.” 마음을 읽어주며, ‘내가 참으면, 아이도 배운다고 했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변한 나를 보고 남편이 “은혜 받았니?”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유효 기간은 짧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내가 종인가, 식모인가.’ 마음이 어지러웠다. 아이의 감정과 행동을 헤아리다 정작 내 마음 둘 곳을 잃었다. 이틀 만에 원래대로 돌아온 내가 한심했다. 육아서의 엄마와 현실의 나는 너무 달랐다. 육아서 저자는 정말 그렇게 아이를 키웠을까.


  한 걸음 떨어지니 이제야 보인다. 그 시절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나는 실패자의 인생을 살았다.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날 수 없어. 어서 무언가를 해야 해.’라며 나를 내몰았다. 여건은 따라주지 않았고, 모든 것이 버거웠다. 한편 나는 모성을 오해했다. 애착 육아가 불편했지만,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끝내 화를 냈다. 떼를 쓰는 아이 앞에서 이성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엄마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정작 그 자리도 잘 지키지 못 하는 괴리감가 나를 눌렀다. 아이도 그런 나를 아는 듯했다.


  편집한 육아는 아름답다. 삼둥이는 2014 KBS 연예 대상을 수상하며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송일국은 자전거에 수레를 연결해 세 아이와 함께 센트럴 파크를 달렸고, 민국이는 선한 눈망울을 깜박이며 작은 별을 불렀다. 삼둥이가 새우, 만두 등 먹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했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일까. 과연 송일국 혼자 자전거와 수레, 아이 셋을 모두 챙기는 게 가능할까. 먹고 난 뒤 옷과 식탁은 누가 치웠을까. 나도 편집하면 꽤 괜찮은 엄마이다. 다만 일상을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무리가 있을 뿐.


  아기는 신비롭다. 아이와 처음 눈을 맞췄을 때, 처음 ‘아오’ 옹알이를 했을 때, 그 안에 우주가 담겨 있는 기분이었다. 작고 여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엄마를 배우기 위해 육아서를 읽다 그만 길을 잃었다. 좁고 어두운 터널을 끝없이 달리는 기분이었다. 이제 안다. 먼저 ‘나’를 찾았어야 한다고, 그랬다면 내가 깊어진 만큼 아이를 이해했을 것이다. 아이는 소리치지 않고 변화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때론 소리 질러도 이해하는 존재이다.


Photo by Jessica Ruscell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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