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린 May 31. 2020

모두 퇴근하면 엄마는 출근한다

어린 시절,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난 줄 알았다

하루키와 나는 닮았고 또 다르다. 하루키가 하루에 20매씩 담담하게 원고를 쓰는 동안 나 역시 담담하게 아일랜드 식탁을 치우고 밥을 짓는다. 반년이 지난 후 하루키에게는 3600매의 원고 뭉치가 남고 내게는 여전히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주방이 있다. - 라문숙, 『전업주부입니다만』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더러운 옷이 저절로 깨끗해지고, 어지럽힌 방도 알아서 말끔해졌다. “엄마, 밥 줘.” 말하면 저녁상이 뚝딱 차려졌다. 그 시절 나는 라면 물도 못 맞추고, 계란프라이를 만들다가 스크럼블로 먹었다. 대신 나는 언제나 책상을 지켰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유일한 인생 과제였다. 그러던 내가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다.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아내, 엄마의 삶이 시작됐다.


  어린 시절 “엄마, 나 왔어.”라며 집에 들어섰을 때 아무도 없으면 속상했다. 상을 받으면, 집에 가서 자랑할 생각에 하루 종일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런 유년기를 보내고도, 나는 ‘나’로 빛나고 싶었다. 친구가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면 고개를 저었다. 현모양처는 바보 같은 꿈이었다. “남녀평등 시대,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결혼하고 집에만 있는 건 인력 낭비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가 전업주부로 5년을 살다니. 


  대학 시절 과외를 하면서 봤던 맞벌이 가정은 이랬다. 밥솥에는 72시간 된 밥이 있고, 식탁 위에 인스턴트 음식이 가득했다. 아이는 혼자 통조림과 3분 요리, 컵라면과 삼각 김밥 등으로 저녁을 때웠다. 가끔 용돈을 받으면, 치킨이나 피자, 자장면이나 돈가스를 시켜 먹었다. 주로 컴퓨터와 TV,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냈고, 햄스터나 토끼, 강아지를 키우기도 했다. 집은 지저분했고, 빨래는 산더미였다.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실이라며 넘기기에 아이는 너무 작고 어렸다. 내가 꿈 꿨던 워킹맘의 현실이었다.


  3년 전부터 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한다. 보통 10시에 출근하고 4시에 퇴근 한다. 전업주부와 워킹맘 중간쯤이다. 워킹맘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초과 근무를 할 때면 새벽에 출근을 한단다. 휴일 새벽 6시에 사무실 문을 열면 비슷한 처지의 워킹맘들이 앉아 있다고 했다. 야근보다 새벽 근무가 나은 셈이다. 아이가 아플 때 워킹맘은 죄인이 된다. 회사, 어린이집 모두에게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또래 엄마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순간 생각했다. ‘우리 맘충이네. 평일 오전에 이렇게 돌아다니면 맘충이 소리 듣지.’ 커피는 테이크 아웃했다. 4시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집에 가야했다. 전업주부는 보통 오전에 만나서 영화 보고 밥 먹고 차를 마신다. 모두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시간이다. 그러면 엄마도 퇴근 시간 이후에 약속을 잡아야 할까.


  모두 집에 오면 엄마는 출근한다. 유치원도 사회생활, 집에 온 아이는 괜히 떼를 쓴다. 손 씻는 것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만나자 마자 싸운다. 저녁 주문도 제각각이다. “엄마, 나는 달걀 프라이 흰자랑 노른자 따로 해 줘.”, “삼겹살 까까(비계를 바싹 구운 것) 먹고 싶어.” 저녁 먹는 중에도 “엄마, 물.”, “엄마, 케첩.”, “엄마, 먹여 줘.” 식당 종업원이 따로 없다. 먼저 먹이고 식은 밥과 반찬을 먹고 있으면 아이는 놀아 달라며 매달려 목을 조른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설거지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한다. 여덟 시, 이제 씻기만 하면 된다. 아이 둘은 신기하게 하루 종일 싸우다가 자기 직전에 너무 오붓한 남매가 된다. 둘째가 “누나야.” 부르면, 첫째는 “우리 신비아파트 놀이하자.” 답한다. 아홉 시가 목표지만, 늘 열 시가 다 되어 잠에 든다. “애들 재우고 일어나서 마저 글 써야지.”, “‘눈이 부시게’ 몰아 봐야지.”, “인터넷 쇼핑해야지.” 생각하지만, 일어나면 아침이다. 가끔 새벽에 일어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가 “엄마, 엄마” 부른다. 꼼작 없이 다시 들어가 옆에 누워 있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엄마로 사는 거 어때?”라고 묻는 다면, “좋아.”라고 답할 것이다. 육아를 지옥이라고 말하기에 생명은 너무 아름답고 신비하다. ‘사랑스러운 미치광이’라고 할까. 주일을 앞두고 둘째가 갑자기 울먹였다. “나 사람들이 만질까봐 교회 가기 싫어.” 낯가림이 심한 둘째는 누가 인사를 하면 뒤로 숨는다. 내가 말했다. “다 네가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한참을 생각하던 둘째가 말했다. “난 왜 이렇게 귀엽게 태어난 거야?” 귀여움은 아이가 울고, 떼쓰고, 고집 부려도 참고 키우라고 준 신의 선물 아닐까. 


  어린 시절,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난 줄 알았다. 아기가 왜 우는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똥 냄새쯤은 아무 것도 아닌 듯 기저귀를 척척 갈고, 수월하게 목욕시키고 옷도 갈아입히는 원래부터 엄마인 사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다. 이유 없이 우는 아기를 붙잡고 나도 같이 울었고, 기저귀를 갈다가 똥 세례를 받은 적도 여러 번, 목욕하려면 우는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몰랐고, 버둥거리는 아기에게 옷 입히기도 쉽지 않았다.


  지하철을 탔다. 백일쯤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잘 놀던 아이가 찡얼거렸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이리저리 옮기며 몸을 흔들었고, 아이는 다시 편안해졌다. 그 모습이 꼭 나 같았다. ‘저 사람도 저렇게 엄마가 되어 가는 중이구나. 아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앞에서 딸랑이를 흔들어도 보고, 품에 안아도 보고, 젖도 물려보고, 기저귀도 갈아보며, 서로를 알아가겠지.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겠지.’ 나도 매일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Photo by Thomas Q on Unsplash

이전 05화 육아서에서 길을 잃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