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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May 31. 2020

실패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아파봐라, 청춘인가

오히려 청춘은, 청춘을 지나버린 사람들의 생에서 발견되는 어떤 지나온 흔적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청춘은, 젊은이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현재적 생의 조건이 아니라, 청춘을 지난 사람들이 뒤늦게 발견하는 ‘기억’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 유성호, 『단정한 기억』


  스물셋 대학을 졸업할 때쯤, 『시크릿』이라는 책이 서점을 휩쓸었다. 플라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인슈타인 등 역사상 위대했던 사람들의 비밀이 담긴 책이었다. 그 비밀은 간단했다. 되리라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 살이 빠질 거라 믿으면 살이 빠지고, 내가 시험을 잘 볼 것이라 생각하면 잘 볼 수 있다고 했다. 기독교 기복주의 신앙과 비슷했다. 나는 의심 없이 실천했지만 살도 빠지지 않았고, 취업도 안 되었다. 내 믿음이 부족하다 여겼다. 돌이켜보면 참 허무맹랑한 소리이지만, 많은 이가 현혹되었다.


  스물여섯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나는 새로운 소속을 찾지 못 했다. 가족에게 면목이 없고, 사람들 눈총이 따가웠다. 그해 겨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래, 나는 늦게 피는 꽃이야. 아직 아침 7시, 뭐가 그리 조급해.” 그런데 나를 위로할수록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르는 듯했다. ‘아파봐라, 청춘인가’ 묻고 싶었다. 취업, 결혼의 문턱에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청춘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어른스런 충고였다. 청춘의 삶이 나는 죽을 만큼 무거웠다. 그 시절 나에게 차라리 “많이 아프지?”라고 했다면 조금 수월했을 것이다.


  취업 준비생으로 3년을 보내고, 결혼을 했다.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난 이제 뭘 하지?’ 물었다. 아직 나의 길을 찾지 못 했는데, 나이만 먹었다. 아이는 반짝였지만, 나를 영영 잃을까 두려웠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잘 살아줘서 기특해.” 남편은 시골로 시집 온 나를 살뜰히 챙겼다. “잘 하고 있어. 고마워.”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랑해.”라며 나를 작은 손으로 토닥였다. 충분한 삶이 나는 언제나 부족했다. 나를 실패자로 내몬 사람은 나였다.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았어요. 전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이 동네도 망가진 거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거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 유라의 대사, 드라마 『나의 아저씨』


  사회는 만 명 중 한 명의 성공 신화만 보여 주었다. 믿으면 이루어진다고, 노력하면 된다고 했다. 나머지 실패담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실패는 성공 이후에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식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삶은 대학, 자격증, 직장 등 한 번의 성취로 좋아지거나 나빠질 만큼 단순하지 않다. 의사가 되어도 힘들고, 되지 않아도 힘들다. 나는 몰랐다. 왜 내 삶만 이 모양이냐고, 왜 나만 뜻대로 되는 게 없냐고 소리쳤다.


  요즘 도서관에서 ‘진로 독서’ 수업을 한다. 열두 살 아이에게 ‘진로’는 뜬구름 같은 말이다. 나의 진로도 아직 진행 중이니. 첫 시간에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학년과 이름으로 짧게 답했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 서른 넘어 알기 시작했으니 당연한 답이었다. 먼저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말’을 써보았다. 내 것을 예시로 보여주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즐겁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택배 왔어.” 같은 말들.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수업이 끝나고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직업은 뭐예요?” 잠시 머뭇하다 답했다. “응, 강사야.” 아이가 말했다. “좋아보여서요.”


  초등학교와 도서관에서 글쓰기 관련 수업을 하는 강사, 한 번도 생각지 못 한 직업이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방과후 강사는 사실 비정규직 수준도 안 된다. 학교 예산에 따라 내가 하는 수업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계약도 1년 단위여서 겨울에 공고가 나면 다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 한다. 도서관 사정도 비슷한데, 예산에 따라 수업 일정이 바뀐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생활이 의외로 괜찮다. 다른 업무도 없고, 정해진 교육 과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덕분에 그림책으로 수업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 종종 내가 보지 못한 것, 내가 하지 못한 생각에 닿는다.


  오전과 오후 수업 사이에 두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보통 도시락을 먹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가끔은 소속감 있는 직장인이 부럽다. 같이 점심을 먹고, 회식을 하는 생활은 어떨지 궁금하다. 언젠가 직장인 친구가 말했다. “점심 메뉴 고르는 것부터 문제야. 우리 팀장님은 돼지고기랑 밀가루 안 먹어. 먹을 게 없어.” 내가 갖지 못한 인생은 언제나 부럽다. 작가로 사는 이들은 보통 생계용 직업을 가지고 있다. 밤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접시를 닦기도 한다. 새벽에 글을 쓰고 낮에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는 일상, 작가인 나에게 이만큼 잘 맞는 옷도 없을 것이다. 실패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Photo by NordWood Them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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