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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May 31. 2020

그 후로 오래오래

나와 남편, 육아 업무를 완수하는 직장 동료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신혼 때 나와 남편은 별로 안 친했다. 책을 읽고, TV를 보고 각자 할 일에 바빴다. 1년 뒤 출산과 함께 모든 시간이 육아로 가득 채워질 줄 알았다면 함께 영화도 보고, 여행도 하고, 외식도 하며 조금 더 단란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둘째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제대로 먹고, 씻고, 자는 기본적인 일조차 어려웠다. 나는 아이와 함께 눈 떠서, 하루 종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를 반복하다 아홉 시면 다시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가끔 눈을 떠서 밖으로 나오면, 남편은 헤드폰을 끼고 TV를 보고 있었다. 농부로, 아들로, 남편으로, 아빠로, 하루를 보낸 사람의 유일한 낙이었다. 2013년 여름부터 2018년 봄까지 우리는 육아 업무를 완수하는 직장 동료였다.


  2018년 봄, 둘째가 어린이집에 입학했다. 6년 만에 둘이 점심을 먹으려니 어색했다. 점심으로 매운 오징어 볶음을 먹으며, “미움이 뭘까?” 같은 현학적인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 모두 출가시키고, 시골에 둘만 남은 노부부 느낌이랄까. 결혼 8년 차쯤 되면, 순간 같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부탁하기도 전에 서로의 요구를 알아챈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비혼자로 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좀 사람 보는 눈이 없잖아. 그런데 당신이랑 결혼한 건 좀 신기해요. 몸 건강히, 나보다 오래 살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험은 들어 놓고.”


  남편과 연애를 할 때 “나는 오빠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단다. 언젠가 전공 시간에 사랑에 대한 시를 다루며,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영화에서 보거나 소설에서 읽은 불꽃같은 사랑을 꿈꾸는데, 사랑도 개인차가 있어요. 저 사람 괜찮은데? 이게 자기감정의 최대치인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 사람이 모두 다른데, 사랑도 다르리라. 하지만 나는 첫눈에 반하고, 생각만으로 설레고, 목숨까지 내놓는 그런 강렬한 사랑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첫눈에 반하기에 키는 좀 작았고, 생각만 해도 설레기에 머리가 컸다. 좋은 사람이지만,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신혼 때,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내가 “오늘 하늘이 왜 저러지?”라고 말하니 남편이 대뜸 말했다. “하늘이 파란데 이유가 어디 있어? 왜라는 질문은 별로 안 좋아.” 순간 당황했다. 남편은 학문적인 질문 외에는 ‘왜’라는 말을 잘 안 쓴다고, 특히 사람의 행동이나 이미 일어난 일에 ‘왜’라고 묻는 건 상황만 더 악화시킨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왜 저래?”라는 말을 자주 썼다. 남편은 아마 ‘왜?’라는 말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고, 애꿎은 하늘에 화풀이를 한 듯했다. 하지만 ‘메신저가 곧 메시지’라는 말이 있듯, 남편의 메시지는 옳았으나, 눈빛은 따가웠다. 그날 우리는 결혼 후 처음 싸웠다.


  첫째 두 돌 무렵 둘째가 태어났고, 육아가 힘에 부쳤다. 두 아이 모두 엄마가 필요했다. 아이를 안고 밥을 먹고, 무릎에 앉혀 볼일을 보고, 화장실 문을 열고 씻었다. 밤사이 두 아이를 토닥이고 젖을 물리며, 아침을 맞으면 언제나 몽롱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너무 힘들다고, 육아의 끝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남편은 다들 그만큼 삶의 짐이 있다고, 견딜 수 있는 고난이라고, 힘들다는 말 자체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거라고, 그러니 그런 말 하지 말자고 했다. 그도 나만큼 육아에 묶여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막막했다. 많은 여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한 일이라고, 투정 그만 부리라고 나를 몰아 세웠다. 외로웠다.


  그 무렵, 소아청소년과 의사 서천석이 진행하는 ‘아이와 나’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육아의 실질적인 고민과 해결책, 여러 전문가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느 날 방송을 듣다 눈물이 핑 돌았다. “육아, 힘드시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준비 없이 부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힘들면 안 된다고 나를 채찍질 했는데, ‘육아는 힘든 거구나, 힘들어도 되는 거구나.’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남편은 늘 관계 전체를 조망했다. “나 오늘 A 때문에 속상했어.”라고 하면, “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거야.”라고 답했다. 그저 들어주면 되는데, “속상했겠다.”라고 하면 사라질 감정인데, 합리적인 조언과 평가는 늘 차가웠다.


  남편과 크게 다퉜다. 난 금성에서 온 여자라고, 그러니 그저 들어주면 된다고, 당신이 안아주면 금세 녹을 감정이라고,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의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고 말이다. 남편은 화성에서 온 남자이기에 논리적으로 맞섰지만, 나는 지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도 못 꺼내게 한 건 잘못이라고, 분명 힘든데 왜 그 말조차 못 하게 했냐고 따졌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내 마음이 그에게 닿았을까. 한참 쏘아붙이던 나를 남편이 꼭 안았다. 그날 이후, 남편의 충고와 판단은 많이 줄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전하며 “진짜 어이없지 않아?”라고 물으면, 영혼 없이 “진짜 어이없다.”라고 할지언정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나는 삼겹살을 바짝 익혀 먹는다. 딱딱한 과자처럼 씹어 먹어도 좋다. 기름기 있는 것을 싫어해 곱창도 안 좋아하고, 제육볶음 먹을 때도 비계는 떼어 내고 먹는다. 그런데 신혼 초, 남편은 “고기는 이럴 때 먹어야지.”라며 중간 정도 익은 삼겹살을 내밀었다. 좀 더 익혀 달라고 하면, “넌 아직 고기를 몰라.”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은 삼겹살을 구울 때, 내 몫은 바짝 익힌다. 같은 콩나물도 남편은 쫄면에 넣어 먹고, 나는 비빔밥으로 먹는다. 그걸 하루아침에 이루려 했으니, 신혼 초에는 마음이 복닥거렸다.


  우리는 다르다. 나는 늘 일을 벌이고, 잔소리를 하고, 버럭 화도 잘 낸다. 남편은 일을 수습하고, 잔소리하기 전에 움직이고, 큰소리가 나기 전에 “엄마, 화났어.”라며 아이들을 단속한다. 우리는 이제 사랑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조금 안다. ‘그 후로 오래오래’ 노력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 이르는 중이다.


Photo by Dương Hữ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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