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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주 Jul 24. 2022

이상한 일

사색하는 우체통

  잠깐 비워둔 사이였다. 언덕에 차를 세워두고 빵이 막 나올 시간이라 나는 급히 서둘러 빵집을 다니러 갔다. 매일 오후 세 시는 빵이 나오는 시간이었다. 무화과 깜빠뉴는 식었지만 겉의 바삭함과 달리 안은 말랑말랑하리라. 눅눅해지지 않게 하려고 빵집 주인인 Y는 종이에 깜빠뉴를 넣고 밀봉을 하지 않은 채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차 때문에,라고 얼버무리고 빵집을 나왔다.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이라 언제 그 공간의 주인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급하게 공원을 가로질러 빠른 길로 차에 다다랐다.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빵봉지를 올려놓고 차를 뺐다. 한참 운전하며 가는데 본네트 위에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조그만, 아주 조그만 새의 사체였다. 앗, 왜 저게 아까는 안 보였지. 혼잣말을 했지만 당황한 마음에 무엇부터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가끔 투명한 빛깔의 곤충이 차체에 붙긴 했지만 속력을 내면 떨어져나갔다. 세상의 무엇보다 더 가벼운 존재들은 그렇게 떨어져나갈 수 있지만 죽은 새의 사체는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차 위에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집까지 차를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집어넣고 나는 차에서 나와 차 본네트 가까이 다가갔다. 사실 새는 본네트와 와이퍼 사이의 위치에 놓여있었다. 사후강직이 온 새는 돌려놓으면 죽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눈까지 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저걸 손으로 잡을 수는 없다, 라는 생각이 스쳤다. 집으로 달려가 위생장갑과 비닐 봉지, 그리고 모종삽을 챙겼다.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새의 사체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주차장의 어둡고 눅눅한 공기를 가늘고 약한 다리로 떠받치고 있었다. 빨리, 순식간에 처리해야 한다. 눈을 질끈 감고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새의 사체를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리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끝났다. 새는 모종삽으로 판 구덩이에 들어갔고 흙이 따뜻하게 새를 덮어주었다.


  K의 전화를 받은 건 그날 저녁이었다. K는 한참을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듣고 있으려니 힘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K의 비극이 점입가경이 될수록 몸에 긴장이 바짝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떡하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그 말만 반복했다. K의 한숨이 길어질수록 전화를 끊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일이 다 내 탓인 거 같아서'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모든 일이 어떻게 다 네 탓이야. 원래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일에 대한 책임은 다 당사자가 지면 되는 거야." 소리치듯 외쳤다. 그래도, 라는 K의 긴 한숨 같은 대답을 듣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착해서 미안한 것이 많은 K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너무 착한'이 소름끼치도록 싫을 때가 종종 있었다. 모든 불행을 이고 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어려움을 자신이 해결하려 드는 책임감이 부채감으로 남아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할까. 문득 낮에 본네트에 죽어있던 새의 사체가 떠올렸다. 나는 징크스를 믿지 않는다. 아침에 그릇을 깨도 나쁜 꿈을 꿔도 내 하루를, 내 일을 망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실수로 그릇을 깼을 뿐이고 나쁜 꿈은 잠자리가 불편해서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에 대해 무제한의 책임을 지려고 생각하지 않았고 책임감에 짓눌리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종종 이상한 일은 일어났고 어쩌면 알게 모르게 내 하루를 변화시켰는지는 모르겠다. K는 꿈이야기를 잘 했고 종종 사주든 관상이든 미래를 알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부탁하곤 했다. 두어 번 그녀를 따라갔지만 나는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인상이 싫어서 쪽집게에 가까운 말처럼 하는 마주하고 있는 무슨 도령이나 선녀를 향해 엷게 웃어주고 나오곤 했다. K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말을 더욱 맹신했다. 그들은 이미 그 일이 일어날 걸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새가 죽은 것을 발견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한번은 베란다 한쪽에 있는 실외기 위에 새의 사체가 미이라처럼 말라 죽은 걸 발견한 것이다. 새까맣게 변했지만 새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빳빳하게 말라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주검이 그토록 얇고 작은 건 처음 봤다.  마당에 묻어주려고 부엌으로 달려가 위생장갑을 챙겨 돌아와보니 새의 주검은 사라지고 없었다. 바짝 말라 수분기 하나 없는 새의 사체는 너무 가벼워 바람 한 점에 쉽게 날려가버릴 정도의 무게로만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전에 있던 새의 시체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 합리적 의심은 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으니 그 일은 이상한 일의 목록에 들어갔다. 살다보면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는 것 같다. 나보다 더한 이상한 일을 겪는 사람이 있으니. 그럼에도 나는 그런 일을 가슴에 담아두지 않는다. 그런 일이 어떤 큰 일에 대한 전조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까.


  K는 며칠째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마음이 상해서 받지 않을 수도 있고 더 힘든 일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그녀와 통화가 된다면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 깊이까지 미안한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조금 삶을 가볍게 살 필요가 있다. 책임감으로 헉헉거릴 필요도 없고 자신을 둘러싼 이상한 일들 때문에 휘둘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린 양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한정된 것처럼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한정되어 있다. 그냥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스스로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착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독하게 굴 필요도 없다. 매일 새로운 백지의 하루를 펼치듯이 살다보면 그 백지 같은 하루를 채우는 고단함이 성과로 나타날 때가 있으리라. 이상한 일은 이상한 일대로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는 게 오늘을 사는 지혜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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