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12
'한국에 삽니다’를 읽고
안드레스 솔라노의 ‘한국에 삽니다’를 신문에서 접하고 바로 알라딘에 책 주문을 했다. 마침 암으로 세상을 뜬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와 이우성 시인의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두 시집의 스터디가 있어 함께 주문했다. 책은 생각보다 늦게 왔는데 이상하게도 책이 늦어지는 게 안달이 났다. 얼른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신문 기사에 실린 짧은 문장만으로도 이 책 속에 있는 내용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흔하게 한국이 좋아요, 한국이 아름다워요 하는 얘기가 아닌 이방인의 시선으로 느낀 내 나라의 느낌을 알고 싶었다. 책에 서 언급했듯 우린 타인이 말하는 우리에 대해 병적으로 궁금한 것 같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말했는데도 말이다. 나도 그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는 걸 숨기지 못하겠다.
물론 이 책은 그의 아내가 번역을 했기에 정확하게 그의 문체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툭툭 던지는 말이지만 고심해서 썼을 짧은 문장들은 멜랑콜리하면서도 우울하지 않고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다. 그의 책 속에 등장하는 짧은 문장들이 줄을 긋게 하고 싶었지만 나는 줄을 긋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꺽쇠처럼 책을 약하게 접어 다시 읽게 된다면 여길 다시 읽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의 책들을 다시 읽겠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으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비 오는 날 듣는 재즈를 함께 들었다. 너무 시끄러워도 너무 조용해도 집중이 되지 않아 어느 틈엔가 작게 음악을 틀어놓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비 오는 날 듣는 재즈 같다. 생각해 보니 중남미 스페인어 권 문학은 대체로 그런 것 같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루이스 세풀베다도 그렇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의 마르케스도 그렇다. 중남미 문학은 스페인 정복의 역사와 원주민과의 갈등 스페인 본국으로부터의 무관심 오랜 독립 전쟁 등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스페인 사람들의 정서에 밝으면서도 어둡고 자부심이 있으면서도 존재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이 작품 속에서도 모국인 콜롬비아를 그리워하면서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던 작가의 마음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아시아 여자,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게 된 콜롬비아 작가의 한국 정착기라고 할 수 있다. 일기처럼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간 글에서 솔직한 한국 삶의 고단한 점과 정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한국이란 나라의 이해할 수 없는 점과 그럼에도 이곳에서 살면서 편안함을 느껴가는 작가의 마음이 솔직하게 적혀 있다. 어떤 부분에선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에 수정이란 아내에 대한 부분은 그다지 크지 않다.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 양념처럼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태원에 방 세 칸짜리 집을 얻어 사는 작가의 환경 때문이라서 이태원은 이야기의 소재로 여러 번 언급된다. 이태원은 내게도 특별한 곳이다. 세 살부터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6년 정도를 이태원과 보광동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유년의 기억은 워낙 강력해서 울산에서 20년을 산 뒤 서울로 이사 가서 제일 먼저 가본 곳이 이태원이었다. 내겐 고향 없는 사람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하기도 한 방역차는 내 유년의 아주 작은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뿌연 연기를 따라가던 친구들과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골목’이란 카페는 가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내가 서울서 살며 이태원에 갔다가 작가를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태원은 옷을 사러 가기도 하고 이색적인 음식점을 가고 싶을 때도 가고 빈티지 가구나 중고 물건을 사러 가기도 하고 경리단의 새로운 카페를 찾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형식으로든 스쳐갔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느낌이 꼭 그렇다. 내가 생활하는 한국, 서울이란 곳의 정체성을 여행을 통해서 봤을 때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지만 역사의 흔적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은 곳, 전쟁의 흔적도 없고 어느새 성장과 발전의 대명사처럼 언급되는 서울이란 곳, 열정적이지만 경쟁적이어서 알 수 없는 사람들인 서울이 이방인들에겐 정말 이상한 곳이지 않을까. 이상한 곳에서 선의를 베풀 때가 있는가 하면 비열할 정도로 타인을 짓누르기도 하고 말간 얼굴의 낮과 화려하게 화장한 밤의 얼굴, 점잖은 척하는 사람들이 밤이면 술에 찌들고 성매매를 하고 속도에 광란하고 소리를 치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이면 그 전날의 낮처럼 말끔한 얼굴로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서울은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경이롭기까지 할 것 같다.
달력에서 본 문장들, 고통은 항상 새롭다. 쾌락과 마찬가지로. 행복이란 변덕쟁이의 만족감 위에서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무수한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다. 성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늙을 뿐이다./p169
이런 문장들이 좋다. 그의 문장인지 그가 달력에서 본 문장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엔 이런 문장들이 종종 있다. 아마도 그의 사고 체계에 이런 문장들이 잘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감할 부분들이 많았다. 이태원의 후커 힐 같은 곳은 우리의 숨겨진 들춰내고 싶지 않은 과거다. 지금은 외국인 여성으로 대체되었지만 과거엔 한국의 많은 딸들이 그녀들처럼 미군들을 상대로 몸을 팔았다. 나는 그녀들을 안다. 몇 년간 서울에서 살면서 그녀들과 교감을 나눴고 그녀들의 사진을 찍어 전시회도 열었다. 그녀들이 가족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서 혹은 인신매매에 의해 혹은 폭력을 피해 몸을 파는 상태로 전락했고 그걸 이용해서 이 나라가 외화를 벌어들인 과거에 대해서. 그녀들을 어떻게 소비하고 어떻게 버렸는지 그녀들의 역사를 알고 있다. 그 성매매의 역사가 여전히 지금도 아주 교묘하게 남성들 위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작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고상해 보이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음지의 사업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내가 그걸 다 알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또 전철에서 마주한 토사물처럼 부끄럽지 않게 내뱉어지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부분이라는 걸. 가령 ‘아울렛 유니버시티’라는 광고판에서 ‘삼류대’가 얼마나 모욕적인 이야기인지,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 하지만 작가는 그걸 이상하게 볼 뿐 좋다, 나쁘다고 평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현대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모순일지도 모르겠고 인간의 삶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선으로 보는 여러 가지 일화들이 재미있다. 가령 한국의 아줌마라는 존재에 대한 분석(?), 북한의 위협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들, 차에 고장이 나서 연기가 나는데도 카드를 찍고 차례로 내리는 사람들, 분노라는 뜻의 스페인어 ‘라비아’와 성기라는 뜻을 가진 ‘폴라’를 상호로 쓰는 한국의 점포들, 팬티에 대한 한국에서의 정의, 이태원의 부촌과 이주 노동자들이 사는 골목, 그 외 많은 부분들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얼마 전 유튜버 중 영국에 사는 한국인이 영국 티브이에 나오는 방탄의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작가가 방송국에서 일하며 멀리 자신의 모국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전하는 뉴스를 듣고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의 사연을 읽으면 기분이 묘할 것이다. 외국을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가 한국에 얼마나 더 살지 한국에 정착할지 그건 모르겠다. 이 책에서도 그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에 살면서 스페인어로 한국 문학의 다양성 층위를 만드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것으로 아내와 다툰 적이 있다고 했다. 결국 한국어를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가 한국어를 하게 된다면 그의 스페인어로서의 작가적 감성을 잃게 될지 그것도 모르겠다. 스페인어로 쓰는 한국적 감성은 어떤 것일까. 결국 한국에 살면서 한국의 정서와 음식과 문화가 생활화된다면 그의 문학은 한국 문학이 될까, 스페인어권 문학이 될까 그것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의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크누트 함순의 책을 주문하고 작가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