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11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벨 훅스’을 읽고
2016년 5월 17일 강남역의 한 화장실에서 여성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처음 보는 남자에게 살해된 것이다. 이유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의 감정, 여혐이란 말이 사회적 용어로 대두된 결정된 계기가 되었다. 그 사건은 ‘여자’로 태어난 것이 삶을 위협받을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이란 것을 여성들에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여혐에 대항하는 여성주의 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여성주의 운동은 과격한 사회운동을 하는 파괴적인 존재들로 인식된다. 일부 여성들이 여혐에 대해 반기를 들며 남성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항하며 남성의 여혐에 맞서 남혐의 형태를 폭력과 파괴, 폭로로 미러링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여성과 남성이 더불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반목하는 젠더로서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제 여혐이나 남혐이 더 이상 이상한 단어가 아니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그간 여성운동, 페미니즘 운동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인간답게 대접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지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페미니즘을 여성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과격하게 남성과 대치하는 전사 같은 여성을 떠올린다.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여자를 대하는 사회의 방식은 기센 여자, 드센 여자, 여성의 옷을 입은 남성처럼 대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페미니즘을 역사의 한 과정으로써 한 때 그랬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억압받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모든 이들의 평등과 권익을 위한 운동이라고 제안한다. 결국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 이외에도 인종차별에 놓여있는 유색인종(이 책을 지은이가 미국 흑인이라 이 책의 모든 배경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이 중심이다),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동(아동에 대한 폭력은 남성, 여성을 따로 가르지 않는다), 권력이 있는 여성에게 성차별을 당하거나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남성, 성소수자 등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민주주의의 발달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진 것 같지만 사실상 민주주의의 발달은 자본주의와 함께 하며 더 많은 불평등과 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한 고통을 주고 있다. 현재에도 여전히 억압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더 심화되고 있다. 저자 벨 훅스는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태어나 전 생애가 투쟁의 역사였을 것이다. 흑인이었기에 사회적으로 인종차별을, 가정 내에서 아버지에 벌어지는 성차별을 사회에서 백인 여성과 경쟁하며 우정을 얻기도 하지만 역시 인종차별과 능력 차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도 모두를 아우르는 인권운동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지적대로 많은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여성학자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운동가에서 학자로 주저앉았고 여성학은 어려운 학문으로서만 인식되어 왔다. 그녀들이 학자가 되고 교수가 되면 이 사회의 주류세력이 되어 말뿐인 여성운동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페미니즘 운동이 위축되고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게 했다. 이 부분을 벨 훅스도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서문에 서술한 내용, 페미니즘 운동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남성들의 동참도 유도할 수 있으며 우리가 자매애로 다시 뭉칠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미투 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던 지난 1년간 용감하게 성폭력에 노출되었던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낸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역으로 비난을 당하는 지경에 이른 상황을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다.
나는 결혼을 하고 전업 주부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중간중간 일하는 여성으로 가정과 일을 병립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고 보다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굉장히 힘들다. 한국에서 요구되는 자격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학맥, 인맥, 경력, 능력 모든 면에서 탁월한 여성에게 그나마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여성에겐 현실적으로 능력 있는 남성을 만나 남성의 권력에 기대에 그의 부와 권력을 함께 누리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한 성공의 길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뷰티 산업과 성형기술이 발달한 배경에는 그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여성의 미모와 몸매가 능력 있는 남성을 만나고 그와 결혼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벨 훅스가 제안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한국에서 요원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이 책에서 지적했던 여성들이 스스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순을 자각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교육을 받고 자유가 팽만한 이 사회에서 여전히 억압과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단 한 번도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들만의 것이라고도,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해본 적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모두가 페미니즘에 한 발 더 다가오게 설득하지 못하면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확신했다. p11
‘개정판에 붙여’의 챕터에 있는 위의 글은 시사하는 것이 크다. 소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에 가다’는 커리어 우면 수전이 결혼을 한 후 어떻게 자기만의 공간을 상실해 가는지 잘 보여준다. 성공한 여성에게도 또 교육받고 일정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여성에게도 결혼이란 제도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지적이고 이성적인 여성에게 결혼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자기애와 성취욕이 거세된 삶은 교육받고 자의식이 강한 여성에게 결혼은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 성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오히려 여성을 더 억압적일 수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여성의 입장에서 성의 자유는 도덕적인 판단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매슈는 아내가 남자를 만나며 19호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불륜을 폭로하고 더블데이트를 제안한다. 결국 수전은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을 통해서만 자신의 온전한 공간을 갖게 되는 여성들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데이트를 거절한다고 해서 이혼을 요구했다고 해서, 헤어지자고 해서, 이제는 여자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 메커니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폭력을 휘두르는 많은 남성들 역시 여성들이 겪었던 폭력과 무관심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처럼 그들도 똑 같이 폭력과 무관심에 노출되었던 소년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따뜻하게 돌봐주어야 할 어른들의 부재나 그들이 직접적으로 가한 폭력과 폭압이 폭력적인 남성 어른으로 만든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미국 사회운동 가운데 우리의 문화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문화가 아니며 부모가 자식을 자기 의지대로 조종하는 소유물로 본다는 사실에 주목한 최초의 운동이다. p175
가정 내에서 부모로부터 게다가 여성으로부터 강요되는 남성성의 강조와 폭력은 소년을 성차별주의자로 또 폭력자로 키운다는 사실에 우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학이 여성이 먼저 학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과격하게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반가웠다.
전쟁이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아동에 대한 성인의 폭력, 십 대에 대한 폭력, 인종 차별로 인한 폭력 등 어떠한 방식의 폭력이든 사회 통제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면 여남을 불문하고 반대해야만 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종식하기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은 모든 형태의 폭력을 종식하는 운동으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p157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만약 그녀가 제안하는 이 방식대로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된다면 ‘페미니즘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삶을 돌보고 긍정하는 방식으로 정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p169)’처럼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닌가.
한 편으로 이 책을 읽으며 이 사람은 이상주의자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에 대한 기대와 인간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혼재하는 상태에서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공존하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교육하고 널리 알리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에 미리 힘이 빠지기도 한다. 해설 부분에 ‘페미니스트들이 싫어 is에 가입한다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는 슬프기까지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 게이 책을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 책을 읽어서 페미니즘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 긍정적인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즘 서적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갈리아의 딸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등등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의 다양한 형태의 운동을 접했다. 시민운동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운동방향이나 목적과 종착점이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운동은 여전히 여성이 억압받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이나 불평등에 저항하는 운동만큼이나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운동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그럼에도 벨 훅스가 지적한 것처럼 백인 여성이 자신이 이미 백인으로 얻은 권리 위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연대했다가 쉽게 돌아서는 상황, 여성학자 혹은 전문직 여성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되고 원하는 권력을 얻게 되었을 때 백인 남성과 담합해서 자신이 받았던 차별을 역으로 여성에게 가하는 것에 한국적 상황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신이 편안한 삶을 향유하자 많은 여성들은 그 뛰어난 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누리는 윤택한 삶을 자식도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라는 욕구(욕망이란 말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에서 자신의 자식을 성차별주의자로 키우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배우지 못한 여성들, 다문화의 여성들, 신체적으로 열악한 여성들, 그리고 아동들을 학대하고 차별하고 있다. 그들이 페미니즘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 사회가 건강하게 다시 유지되도록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 페미니즘을 다른 시각으로 더 폭이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또 쉽게 쓰였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