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
말과 언어는 얼핏 보면 함께 쓸 수 있는 단어로 보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말은 행위나 소통, 상황 중심이고 언어는 시스템과 문화적 구조 중심이다. 말은 언어의 표면이고 언어는 말이 표현하지 못하는 세계를 구조화한다. 말이 음성화된 거라면 언어는 문법과 문자, 기호까지 포함하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어들도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발화되는 순간의 의미를 넘어서 그 사회의 얼굴과 구조까지 반영하는 넓은 층위를 지닌 경우가 있다.
상식(常識)이란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보통 알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판단력, 사리분별이라 설명되어 있는 사전적 의미 때문에 상식은 보편적인 윤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단어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식을 말한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체'라는 표현은 우리가 상식을 얼마나 오판하고 지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내가 그중 가장 심한 사람일 것이다. 나의 상식은 내 편견의 집합체이다,라고 말하니 상식의 의미가 보다 절묘하게 적확한 의미를 드러낸다. 아이러니다.
상식은 현재라는 무대 위의 대사와 같다. 누구나 알아야 한다고 여겨지고, 대부분은 별 의심 없이 그 대사를 따라 외우고 있지만 정말로 그 대사가 내 것이 되는 순간은 드물다. 왜냐하면 '상식'은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자란 환경, 즉 부모의 양육 상태, 내가 속한 사회의 언어와 습관, 만나는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어제는 당연했던 것이 오늘은 편견이 되기도 하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와 전혀 다른 상식 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바뀐 환경 안에서 점차 내 사고 체계 안에서 변화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그건 누구나 다 알지 않나?' 라거나 '그건 상식적인 거 아냐?' 라든가, '어떻게 상식을 가진 사람이 그럴 수 있어?'라며 말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내가 속한 방 밖으로 그를 밀어내는 일이 된다. 상식은 공감의 바닥을 만들어주는 공용어로 쓰여지기도 했고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상식이 바뀐다는 걸 나는 요즘 절실하게 느낀다. 아직도 '상부상조'하고 '공동체의 선'을 추구하는 보편적 정서가 있다고 믿었는데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아니, 원래 상식은 인간 세계 모두의 공통의 정서를 바탕으로 생겨난 보편의 사유를 말하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나 불공평과 불공정은 존재했고 각각의 사회에 존재하는 상식이 달랐다는 걸 내가 몰랐다고 하는 게 더 적확하지 않을까.
12.3 계엄이후에 나는 상식과 보편의 함정에 빠져 절망하고 아파하고 분노했다. 사적 이익이 최선이 되고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생물처럼 의미가 움직이는 상식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대사를 암기해서 대응해야 하는 배우는 상대 배우의 대사를 알지 못하면 무대를 망치게 된다. 상식에 대한 나의 몰이해는 현재라는 상황에서 잘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현재 통용되는 상식의 언어, 그 내면의 편견과 사람들의 욕망, 사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린 보편의 상식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상식도 내 편견의 집합소, 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