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길을 지나가는데 눈앞에 돌이 놓여있다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재미로 돌을 발로 찰 거고 어떤 사람은 그 돌을 비켜 지나갈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사람을 생각해서 그 돌을 한 곳으로 옮겨 놓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변에 이런 돌이 있을 수가 없는데 어디서 왔는가, 돌을 들어 들여다볼 겁니다.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겠지요. 우선 돌 하나를 두고 생각을 한다와, 생각을 하지 않는다로 나뉩니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재미로 돌을 발로 치는 것과 흘깃 보고 지나는 것이 해당되겠지요. 생각하는 사람은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주변 지형을 살펴보고 그 돌이 어디서, 왜 있는지를 따집니다. 생각이 어떻게 뻗어 나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발로 쳐낸 돌이 누군가에게 맞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기물을 파손시킬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나는 차의 타이어를 펑크낼 수도 있겠죠. 생각해서 움직였을 때 타인에게 생길 위험을 위해 돌을 옮긴 사람은 그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배려해 준 사람들 덕에 잘 돌아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또 그 돌이 축대나 산에서 흘러온 돌이라면 안전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또 일부러 그것을 갖다 놓은 것이라면 그건 폭력입니다. 그걸 신고하거나 관계 당국에 연락하면 더 큰 위험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돌 하나를 보고 생각이라는 행위 하나로 빚어지는 나비 효과는 생각보다 꽤 커 보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편리한 기기들이 손에 잡히기 시작하면서 생각이란 기능이 많이 멈춘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린 매 순간 생각이란 걸 합니다. 하지만 어떤 물건, 사건을 접했을 때 머리에 반짝하고 스쳐가는 이미지나 단어를 우린 생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각적, 청각적 반응을 우린 생각이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감각적 자극을 통해 들어온 것은 전기신호를 통해 뇌의 특정 부위에서 처리됩니다. 그리고 정보를 받은 뉴런은 전기적,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반복되거나 중요한 정보는 해마에 저장됩니다. 시냅스 연결이 반복될수록 강화되고 어떤 특별한 자극에 활성화되면 저장되어 있던 정보가 연관된 것을 끄집어내어 그에 따르는 반응을 이끌어내지요. 이때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계획하고 상상하며 고차원적 사고로 전환합니다. 생각이란 이렇게 우리 뇌를 고차원적 도구로 무장시켜 줍니다. 자연을 보는 우리의 시각적 처리와 유튜브나 티브이를 보는 뇌의 시각적 처리는 위치부터가 다르다고 합니다. 자연을 봤을 때의 우리의 뇌는 생각하지만 기승전결까지 모든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상은 생각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합니다. 눈앞에 놓인 돌 하나를 봤을 때의 반응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생각의 힘은 사실 근육과도 같습니다. 근육을 쓰면 쓸수록 미세근육까지 키워져서 울퉁불퉁한 근육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듯 생각은 하면 할수록 뇌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우린 착각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뇌와 생각을 많이 한 뇌 부위가 같은 거라고 말히지요. 지식의 저장은 주로 해마와 측두엽 등에서 담당하며, 사고와 판단은 전전두엽이 중심이 됩니다. 물론 이 과정들은 복잡한 네트워크로 상호작용합니다. 사유하는 뇌는 전두엽에서 주로 추론, 판단, 계획, 감정 조절, 자기 성찰 등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역들은 신경회로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사고를 더 강화하고 보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심도 있는 질문을 할 때 더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식은 그냥 뇌의 한 부위에 저장되어 있을 뿐입니다. 연료는 가득 하나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와 같은 경우라고 할까요.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은 생각하는 힘만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걸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오래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게 지식인 셈이지요. 그러니 공부만 많이 한 사람은 성실한 사람으로 대접받으면 됩니다. 그 이상 존경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 그 근육이 강한 사람이겠지요. 지식을 배경으로 해서 생각하는 근육을 키운 사람이야말로 존경받아야 할 인물입니다.
한국은 문사의 힘이 강합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큰 시험에서 성과를 낸 사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는 시험이란 기능에 최적화해서 자신을 단련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이룬 업적 이후에도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책으로 남긴 사람들입니다. 박제가는 청나라를 다녀온 뒤 조선이 발전하기 위해서 도입해야 할 기술들과 기계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자세하게 남겨 시대의 변화에 대한 제언을 했습니다. 정조는 실학자들을 중용하고 과학, 기술, 사회개혁을 시도한 왕이었습니다. 정조가 선택한 학자들은 그야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조 역시 새로운 학문에 관심이 많았고 화성건설에 과학기술을 접목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배경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파벌을 만들어 정치를 나락으로 끌고 간 조선 후기의 학자들과는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엔 시간의 간극이 큽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현재에 끌어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 언제나 뛰어난 민족이라고 국뽕에 차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하는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힘은 언제나 강했습니다. 서양이 오랜 세월 지구에서 강한 힘을 가진 것도 그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대신할 기계가 많아진 지금과 같은 시대에 사실 생각하는 힘은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생각하는 힘을 가진 기계를 기다리기 전에, 우리가 더 강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