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by 이성주


독서일기 16



고독한 백 년의 가계도, 삶의 순환


내게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로서 한 집안의 기둥으로 수 많은 자식의 죽음을 먼저 봐야 했고 배를 아파 낳지 않은 자식의 죽음을 통해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쳐야 했고 생계를 책임지고 자신이 집안의 화의 씨앗이 될까 전전긍긍했던 것처럼 다시 집안에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랬던 한 어머니의 고통스런 삶, 우르슬라의 삶이 너무나도 고독하게 박히고 있었다. 어쩌면 창세기가 세상의 탄생과 아담으로 이어지는 남자의 역사라면 이 책은 이브의 역사를 다룬 것이 아닐까 싶다.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인물이 우르슬라였다. 그리고 또 다른 여인들 레베카였고 아마란타였고 미녀 레메디오스였고 메메였다. 그리고 이 슬픈 가계도의 막을 내리게 만든 아우렐리아노의 여자 아마란타 우르슬라였다.


1 책의 배경이 될 수 있을 슬픈 중남미의 역사


1560년대까지 50년에 걸친 침략은 콜롬버스의 대륙 발견 이후 탐험가라는 이름으로 대륙으로 들어온 사람들 이후 스페인의 무력진출은 중남미의 많은 독자적인 문명을 파괴했다. 잉카, 마야, 아즈텍 문화를 말살하고 그들의 수장을 죽이고 그들이 유럽 대륙에서 가져온 각종 전염병으로 대륙의 사람들 90%이상의 사망률로 이어졌다. 곧 중남미는 대륙에서 진출해온 사람들로 채워졌고 그들은 광산과 자원을 마구 채굴하여 본토인 스페인으로 보내면서 스페인은 무적함대라는 이름으로 300년이 넘는 부를 유지할 수 있었고 중남미 대륙은 원주민보다 침략자들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현지에서 태어난 끄리오요들에 의해서 독립의 의지가 생기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시작으로 중남미에서도 독립 운동의 싹이 트기 시작해서 미란다장군이 독립운동의 불을 지피고 시작하고 그의 부하였던 볼리바르라는 끄리요오에 의해서 중남미 독립의 불은 중남미 전역으로 퍼져 독립의 계기를 만들어 하나씩 둘씩 독립을 이어나갔다. 볼리바르는 애초에 미합중국처럼 중남미합중국의 꿈꾸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그의 죽음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각각의 이익에 눈멀어 독립을 이끌었던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은 독립의 기회가 왔지만 정치적은 후진성을 드러내며 또 다른 독재자들만 낳는 계기가 되었다. 군인들의 무력 통치에서 시작해서 제후정치의 또 다른 형태로 독재자들의 오랜 통치 시대를 보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유 쟁취를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고 오랜 독재와 폭정은 빈부차를 벌여놓았고 정치적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넓은 대륙과 수 많은 자원에도 여전히 낙후된 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면 백 년의 한 집안의 가계도는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독립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가진 자들의 천국이 되어 수많은 헐벗은 민중과 독재자들과 혼돈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의 숙명에 대한 슬픈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2 강한 여성 우르슬라


몇 백 년 전부터 알게 모르게 이어온 우르슬라 가문과 부엔디아 가문의 결혼은 실제 우르슬라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결혼하겠다고 그러자 친척들의 반대에 부딪친다. 혹시 돼지 꼬리를 한 후손이 태어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이다. 스스로 정조대를 입고 호세 아르카디오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우르슬라 역시 그것이 가장 큰 근심이었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근친상간을 금하라고 했지만 그녀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멜키아덱스가 양피지에 적은 부엔디아 가문의 백 년에 걸친 우울한 예언서는 우르슬라가 살아온 세월에서 그녀가 예감하고 겪었던 현실과 그대로였다. 내가 읽은 이 책이 흡사 멜키아덱스의 양피지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우르슬라가 겪은 백 년의 역사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이 정신을 잃고 나무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세 명의 자녀와 손자들이 죽는 것까지 다 봐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군 마콘도의 영지와 집들을 몰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끝없이 손보고 돌보고 엄마를 잃거나 아버지를 잃은 손주들을 보살펴야 했다. 누구보다 먼저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간파했고 위기를 느꼈고 자식을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부지런했고 수완이 있었으며 실제적인 부엔디아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늘 걱정하고 단도리하는 입장이었지, 사랑받고 사랑하는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 이 책의 많은 인물들의 고독은 애정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어린 레메디오스에게 연정을 품고 그녀와 사랑을 나눠 아우렐리아노 호세를 낳았지만 그리고 17명의 또 다른 아들들을 낳았지만 우르슬라는 나중에서야 그가 사랑을 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비단 아우렐리아노뿐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정염에 들뜬 육체를 어찌하지 못해 결국 그 정염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잉태해 태어났으며 실제 자신이 사랑했던 인물과의 사이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돼지꼬리를 낳는 결과, 이모와 조카 사이의 애정의 결과물이 돼지꼬리의 아이라는 것이 이 책이 ‘고독’이라는 제목이 왜 붙여졌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우르슬라가 걱정했던 유일한 것이었고 자식들에게 매번 강조했던 것이었지만 부엔디아 집안을 닫게 하는 저주였고 이미 백 년전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그녀의 끝없는 희생과 부지런함의 의미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있으니 우리가 그토록 붙잡으려고 했던 영화나 삶의 무한성에 대한 희망도 결국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 우르슬라는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까지 가장 단단하게 이야기를 붙들어가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녀를 중심으로 복잡한 가계도가 정리되고 있으며 반복되는 이름들의 후손들의 관계를 정리해주고 있다. 물론 그녀가 늙어 아우렐리아노 대령과 어린 아우렐리아노를 헛갈려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때로는 복잡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우르슬라의 말처럼 인생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다. 다른 집안이나 나의 집안이나 누군가의 집안이나.


3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고독, 이 집안의 뿌리 깊은 고독에 대하여


삶이 아무리 복잡하다 한들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결국 삶과 죽음으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 년의 시간은 한 인생의 시작과 끝을 최대한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서 더 이상 백 년이 가지는 상징성이 적어질지는 몰라도 여전히 백 년의 시간은 인생의 기간을 따졌을 때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기대수명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실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백 년이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산다. 교육을 받고 돈을 벌고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고 자식에게든 자신에게든 그리고 배우자에게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그것을 취득하기까지 자비와 애정을 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도덕과 윤리를 잃어버리고 가정을 깨뜨리고 새로운 상대를 찾고 자녀를 병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결국 혼자 죽어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토록 추구했던 것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임을 알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 가족들 앞에서의 죽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그들의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깨닫지만 이미 많은 것을 놓친 경우가 많다. 부엔디아 가문이 살인에서 시작된 것이 이 집안의 비극을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푸르덴시오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 집안의 비극은 유령이 집안을 떠돌고 고독한 것을 숙명으로 태어난 자손들에게서 그 끝을 예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실제로 자신이 사랑하는 인물과 맺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도 사랑하는 삶들 틈에서 맞이하지 못한다. 사랑한다 해도 타인에 대한 지독한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인해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누군지 또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평생을 좇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지 깨닫지만 이미 때가 늦었을 뿐이다. 아우렐리아노는 탄생부터가 남달랐다. 눈을 부릅뜨고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예감한 것이 대체로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자신이 쫓던 것이 수 많은 전쟁과 살육이 결국은 아무 가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늙은 노구를 이끌고 금세공 물고기를 만드는 작업대에 돌아와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많은 전장에서 여자들을 품고 아이를 낳게 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본인도 심지어 어머니인 우르슬라까지 깨닫는다. 애초부터 그가 다른 이들과 가장 다른 점들은 사랑할 수 없는 본성을 타고났다는 사실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이 지구상에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도처에 사랑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진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거래와 계산이 앞선 사랑 앞에서 우린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제적 타격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사랑, 많은 유혹들에 쉽게 옮겨지는 사랑, 상대의 단점에서 쉽게 변해버리는 사랑, 그것이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인간에겐 숭고한 사랑과 함께 쉽게 변할 수 있는 마음을 함께 주신 건 신의 한 수 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만들 때 인간사의 다양성을 만드는 것들은 인간 속에 내재하는 부조화한 감정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엑스마키나>라는 영화를 보자. 천재인 네이든은 그가 만든 인조인간 에이바의 인격, 감정 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해보라는 과제를 프로그래머 칼렙에게 던져준다. ceo의 초대로 그와 함께 보낼 시간을 기대했던 칼렙은 예상치 않은 상대 에이바를 만나게 된다. 그곳을 벗어나고자 철저하게 감정을 연기하고 칼렙의 마음을 열게 하는 인공지능 인물 에이바가 인간을 배신하기 위해 연기하고 감정을 속이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 감정까지 들게 한다. 그것이 인간의 특성인 것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랑이 없는 기계 인간들이 등장한다면 백 년 동안의 고독이상의 고독한 지구가 되지 않을까. 인간이 그나마 긴 역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모순되는 감정이라도 사랑이 가장 숭고하고 중요한 감정으로 인식되어왔고 그것이 이 지구를 살리는 감정이었던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4 레베카, 아마란타, 메메


사랑을 잃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독사와도 같은 깊은 증오의 마음을 품었던 사람, 증오 때문에 자신을 돌보지 않은 사람의 최후를 보여주는 세 사람의 인생은 고독과 쓸쓸함만이 감돌 뿐이다. 자신을 배로 낳지 않은 사람의 아이로 자라면서 결핍의 시간을 보내온 레베카가 땅과 벽의 흙을 파먹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허상에 지나지 않았고 호세 아르카디오와의 정열적인 애정 행각 후에 그가 허무하게 죽은 이후에 그녀를 찾아온 것은 깊은 허무와 상실감과 고독이었을 게다. 어쩌면 인간 모두에게 사랑의 상실감은 가장 큰 고통이고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또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 간 인물에 대한 증오심으로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숫처녀로 죽어간 아마란타 조차 측은함마저 느끼게 된다. 그녀의 증오심이 얼마나 허망한지 스스로의 수의와 레베카의 수의를 만드는 순간까지도 증오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야말로 사랑을 알 수 있었던 사람에도 사랑을 하지 못했던 사람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숙명이 안타깝기만 하다. 연애란 자신이라는 고독한 지옥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의 억제가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 보들레르의 말처럼 사랑하는 감정이야말로 자기 안에 갇혀 고독하고도 쓸쓸한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고 욕구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미움과 증오로 보낸 시간들. 그건 메메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우리시오와의 욕정은 사실 어머니 페르난다에 대한 반발심이 대부분이었다. 진정으로 사랑해서라기보다 페르난다에 대한 증오와 그녀에 대한 미움으로 시작된 욕정은 마우리시오와의 짧은 만남과 그의 사고 이후 예상치 않은 임신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이 결과는 가문의 문을 닫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관계와 감정을 미움과 쓸쓸함으로 채워나간 여자들, 부엔디아 가문의 여자들의 모습은 사실 질투와 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5 양피지 속의 예언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불길함


사랑이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을 목놓아 부르지만 사랑은 점차 퇴색되어지고 화석화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랑이란 감정이 지독하게도 감성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켜 삶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기엔 지나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역사는 사랑의 결과물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육체의 결합을 동반하고 인간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바탕에는 육체의 결합으로 탄생된 생명들이 만들어낸 역사들이다. 백 년 간의 부엔디아 집안의 가계도를 보면 번창하던 자손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고 그들이 다른 가문과의 결합을 통해 자손을 이어가는 것이 멈춰지는 순간 부엔디아 가문의 끝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나치게 계산적인 시대의 흐름에 환멸을 느껴서든 더 이상의 생식이 불가능해져서든 삶의 바탕에 가정이란 울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든 젊은이에게 사랑이 사치가 되어가는 요즈음 결국 고령화, 경제의 퇴보 등은 한 나라의 미래까지 위협하게 만든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매일 매체를 통해서 확인한다. 폭력의 시대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개인 간 폭력에서 더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로 가고 있으며 점차 광기의 폭력에 노출되어 우리 개인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한 집안의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우리 역사 속에 스러져간 많은 나라들의 역사이며 우리들의 미래일지 모른다. 인간의 고독이란 혼자 있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감정에서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깊은 뿌리로부터 나온 것이 폭력과 전쟁의 역사이다. 어쩌면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이 고독한 책을 통해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이 간단한 진리들을 왜 잊고 사는지.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어쩌면 이 자유분방한 문체와 내용들 환타지가 어우러진 이야기들 속에서 인간의 삶 속에서 간과할 수 있는 진리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어서가 아닐까. 모든 위대한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 간단한 진리들, 내 앞에 내 현실에 있는 이 질문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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