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15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우리는 생존 기계이다. 즉 우리는 로봇 운반자들이다.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아직도 나를 놀라게 하는 하나의 진실이다. /초판 서문 중에서
1974년 이디오피아의 아와시 강 하류에서 한 무더기의 뼈가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 화석을 약 320만 년 전에 살았던 여성의 유골로 추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 인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속하는 이 여성 유골에게는 ‘루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발굴단은 직립 보행을 했던 이 여성이 ‘인류의 어머니’라고 믿었다. 루시를 인류의 조상이며 유인원과 현생 인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도날드 요한슨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 학설에는 허점이 있었다. 루시는 직립보행을 했지만 침팬지의 외양과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며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루시가 현생 인류의 선조라면 사람은 도구를 만들어 사냥하기 위해 일어나서 두 발로 걷게 되었다는 인류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루시의 뼈를 발견하고 고고학계는 몹시 흥분했다. 인류의 기원 내지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의 발달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에게선 인류의 기원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점들이 발견되고 그 후에 발견된 유골들을 통해서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가설을 다시 정립하고 정리하며 현생 인류의 시작을 사피엔스로 규정하고 있다. 유랄 하라리는 인지혁명이란 과정을 통해 유일하게 사피엔스에게만 등장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의 유전자 돌연변이 덕에 집단 개체수 150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유일한 존재로 공동목적을 공유하는 대구모 집단을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 그의 학설에 의하면 인류는 이후 수렵생활에서 농업혁명을 통해 인류가 정착하고 식량 공급과 출산 증가 등으로 집단의 확대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등장으로 전쟁과 약탈, 그리고 정치, 예술, 철학 등이 발달하게 되는 인류의 문화가 꽃피게 되는 계기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결국은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벌어진 유전자적 돌연변이 덕에 지금의 현생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가능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차드 도킨스의 의견에 따른다면 이는 인류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유전자 전이 기계로서 필요한 일이었기에 그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이론이 성립된다. 결국 유전자는 종의 존속을 위해서 같은 종류의 자기 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위해 생존 기계라는 말이다. 그의 이론을 읽고 있자니 인간이(리차드 도킨스가 동물행동학자라는 것인 전제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저 유전자 복자를 위한 생존 기계, 혹은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잠깐 당황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루시나 사피엔스 등을 통해 진화론자들이 이야기한 인류의 기원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과정을 통해서 진화해 왔다고 그래서 인류는 특별하다고 믿고 있었던 게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의 말미에 보면 인류가 다른 동물과는 분명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인류라는 종족 자체도 지구에 사는 어느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가설에는 잠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끝까지 읽고서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책의 여운은 오래 갔다.
흔히 이런 자연과학을 다룬 책들은 읽기가 쉽지가 않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사실들의 나열이 특별한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흥미는 금세 시들어버리고 곧 지리함과 따분함이 따라오기 때문에 지속해서 책을 끝까지 읽기 어렵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을 읽고나니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세계가 안정된 것들로 유지되고 지구상에 생물이 생기기 이전 에너지가 있는 곳에 한 무리의 원자가 안정화된 패턴이 되면 자연선택을 통해서 안정된 것은 선택되고 불안정한 것은 배제하는 특징에 의해서 어느 날 자기 복제가 가능한 유기물이 만들어지고 자기 복제 과정 중 오류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개체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들 변종 자기 복제자들은 스스로 자신과 같은 개체군을 형성하면서 더 오래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개체의 수명뿐 아니라 복제의 속도와 정확도 역시 진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날의 복제자의 보호막은 점차 거대한 유기체 집단으로 변하고 복제자는 그 유기체 속에서 유기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며 그 유기체는 우리 인간이며 인간의 몸과 마음까지도 창조한 복제자는 바로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말한다. 그는 이 복제의 과정에서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하고 동물 실험을 통해서 드러나는 복제 양식을 통해서 인간의 설명하고 있다. 종의 번식을 위해서 행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얼핏 그 종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 행위로 보이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유전자에는 이타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의 일부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p252)
인간은 부모 각각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유전자의 작은 단위까지 생각한다면 우리의 유전자는 꽤 오랜 세대를 거쳐 시간의 여행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라는 개체 속에 있는 유전자의 여행 역시 얼마나 오랜 시간 여행을 지속할 줄 모른다. 그래서 분명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내 안에 있던 유전자는 나의 자식 세대를 거쳐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늘 죽음을 맞이하며 한 세대로 끝나는 이 삶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 철학이 중요한 이유가 이런 까닭이 아닐까. 도킨슨이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은 꽤 의미하는 것이 크다. 자연법칙은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그 여행을 계속하는 사이 인간이 스스로 삶을 돌아봄이 없이 지나친다면 그들이 유지해온 모든 질서와 규칙은 삽시간에 파괴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복제와 돌연변이를 통해서 그리고 혁명을 통해서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인문학서적으로 읽혀지는 대목이었다. 인간의 뇌는 스스로 생명의 탄생을 연장할 수 있으며 질문할 수 있으며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가 유전자의 충실한 실행자라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끈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경쟁관계와 단순히 존재를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된 존재로 인식하는 부분에서는 불편했다. 물론 동물 행동학에서 어떤 일정한 패턴과 규칙성에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진화의 흔적은 찾는 작가에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규칙들을 인간에게 적용시켰을 때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물론 작가도 그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어떤 형태의 진화를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점에서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하여 새로이 등장하는 문화적 전달자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그리스어의 어근 ‘mimeme'을 ’밈 meme'으로 줄여서 쓰자고 한다. 인간은 DNA의 자기 복제 유전자 외에 문화 전달자로서의 밈이라는 또 다른 유전자를 갖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그 과정에서 밈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유전적 유기체처럼 밈풀의 복합체로 볼 수도 있다. 유용한 정보는 선택하고 종교와 같이 공동체의 이익과 희생이 강조되는 수단을 이용해서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밈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상생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기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방은 밈의 자기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다.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즉 유전자와 밈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유전자 기계이다. ... 그러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지 않는다. 유전자가 그 생존기계에 재빠른 모방 능력을 가진 뇌를 제공하게 되면 밈들은 자동적으로 세력을 얻는다. 유일하게 필요한 완전무결하게 이용하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 p347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었지만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p349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유전자 복제와 과정에서 스스로 파멸하거나 전쟁을 통해 서로를 죽이는 과정에서 멸종될 위기에서 더불어 살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동물행동학에서 보여주는 다른 동물들처럼 프로그램 된 채 살아갈 수도 있지만 이기적인 유전자에 반해서 스스로 이타적 행동도 할 수 있다.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교육을 통해서,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서로를 죽이고 해치는 과정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늘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