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

독서일기 14

by 이성주

'달과 6펜스'를 읽고



에필로그


꿈을 꾸곤 한다. 단 한 문장이 꿈에서 어룽거린다. 퍼뜩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켜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냥 잠을 청한다. 꼭 기억하고 있다가 내일 수첩이든 노트에든 옮겨 적어야지. 그러나 그 단 하나의 문장은 다시는 생각나지 않는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처럼 한 움큼 쏟아져 내렸던 화려한 금색의 단 한 줄의 문장은 다시는 내게 오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예술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을 때 내려지는 형벌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작품은 쓰지 않겠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쓰겠다는 다짐은 결국은 게으름의 다른 변명이었다. 예술가에게 작품은 형벌이고 일상이고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떠나지 못했고 시작하지 않았고 형벌을 달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예술은 내게 어렵다.


달의 세계를 동경한 사나이


40대의 남자가 현재를 거부하고 집(현재)을 떠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동안 가족에게 헌신하며 이상을 포기하고 살았으니 더 이상 자신의 이상을 접고 살 수 없다는 것이 집을 떠난 이유였다. 달을 따러 떠났다는 말만큼이나 생경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달은 이상주의자들의 상징이었다. 쥘 베른이 쓴 달나라 여행은 달성 가능하지 않았던 상상 속의 산물이었다. 1900년 대 초 누구도 달나라에 갈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모옴이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을 썼던 것은 ‘달’이 주는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의 세계, 초월적 그 무엇을 추구하는 이에게 닿을 수 있는 세계로 상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21세기에 달은 더 이상 가닿을 수 없는 세계가 아니라 로켓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쥘 베른의 소설은 더 이상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달이 더 이상 저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가닿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은 어쩌면 현재의 예술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고갱을 소재로 쓴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너무나 친절하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스트릭랜드를 찾는 숨바꼭질을 한 듯한 느낌이다. 그는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보다 현재에 안주하고 욕망에 충실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고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더 눈에 띄었던 까닭은 자기밖에 모르며 자신의 욕구를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사람이 지금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트릭랜드가 여전히 관심을 끌며 가슴 벅차게 하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닿고자 하는 미술(예술)에 대한 열정과 안락한 생활을 거부하고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살았던 삶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고집과 확신이 있기가 얼마나 힘든가. 달에 닿는 것이 현실화되었지만 여전히 달은 평범한 사람에겐 갈 수 없는 곳이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달의 세계를 동경하기는 쉬어도 달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사람은 몇 안된다는 사실, 여전히 달의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는 걸./ 민음사 276p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마음 속에 들어선 마귀는 무자비했어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셔버리려고 해요./민음사 276p


6펜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6펜스’는 누구나 다 알듯 성공과 부와 명예를 가리킨다. 왜 6펜스일까, ‘달과 6펜스’의 원 제목은 ‘달만한 6펜스’였다니. 동전의 크기가 어쨌든 달의 크기가 어쨌든 실상 동전 크기만 한 달과 달 크기만 한 동전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지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스트릭랜드 부인이나 그 외의 등장인물처럼 보통의 사람은 안락한 생활을 꿈꾸고 그 이상을 지나쳐 속물적인 욕망으로 살다 허망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가 지난한 전쟁과 수탈과 살육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오는 것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평범한 꿈과 소박한 삶 때문이다.


세상은 참 매정해.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라. 그러니 겸손하게 살아야지. 조용하게 사는 게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해. 운명의 신의 눈에 띄지 않게 얌전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소박하고 무식한 사람들의 사랑을 구해야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의 무지가 우리네 지식을 다 합친 것보다 나아. 구석진 데서 사는 삶이나마 그냥 만족하면서 조용하게, 그 사람들처럼 양순하게 살아가야 한단 말야. 그게 살아가는 지혜야./민음사 184p


더크 스트로브, 스트릭랜드와 비교되는 미술가인 그의 체념 섞인 대사에서 6펜스가 현실의 안락과 그에 따르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라지만 결국 그 6펜스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치가 나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두 개의 선택지 혹은 여러 개의 선택지가 아예 주어지지 않은 채 살아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가치, 예술가로서의 혹은 어떤 특정한 재능이나 열정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수많은 평범한 삶들의 선택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는 끊임없이 모차르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결국 모차르트가 죽음에 이르도록 진혼곡을 작곡하도록 부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내용처럼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평범하게 태어난 것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살리에르는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더크 스트로브는 살리에르처럼 스트릭랜드의 재능과 그의 예술혼을 일찍이 발견하였지만 자신에게 빠져있는 그 능력으로 해서 가장 고통받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유일한 기쁨이었던 블란치를 스트릭랜드에게 빼앗겼을 때 그리고 그녀가 스트릭랜드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보았을 때 스트로브의 비애야말로 평범한 사람이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하는 수많은 욕구에의 포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높은 이상으로 포장한 스트릭랜드의 미술에 대한 욕구나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기심이 묻어나는 행동을 일삼는 많은 사람들과 결국 맥락이 같은 잔임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더크 스트로브의 아가페적인 사랑과 배려는 그를 일순 바보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 또한 스트릭랜드가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에서 가치있는 일이다. 수많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 이 세상의 수레를 굴리게 하는 평범하지조차 않는 사람들의 희생, 6펜스 역시 가치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스트릭랜드가 스스로 가정을 박차고 예술을 택한 것처럼, 스트릭랜드의 원초적 매력에 빠져 욕정에 몸을 맡긴 블란치처럼, 스트로브가 블란치에게서 버림받았으면서도 자신의 스튜디오를 물려주고 버림받은 그녀의 주검을 땅에 묻어준 선택을 한 것처럼, 스트릭랜드가 죽는 순간까지 그를 보살펴주었던 아타처럼, 스트릭랜드가 떠났을 때 그토록 절망했으면서 그가 명성을 얻자 그의 명성에 살짝 자신의 이름을 얹으려던 그의 부인처럼 결국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이 살아있는 이유이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누군가는 가야할 길을 가게 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더 젊었을 때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열병처럼 따르고 싶었지만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야 모든 것은 다 제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다는 체념어린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

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민음사 90p


그럼에도 스트릭랜드의 삶이 책을 덮어도 오랫동안 남는 이유는 이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에게서 어떤 숭고한 혼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해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다는, 쉽지 않은 그의 삶이 타이티에서 마지막 남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남았으리라.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길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숭고하게, 때로는 좀스럽게,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추잡하게, 그것이 인간의 삶이리라. 달과 100원 짜리 동전은 늘 내 시야에 내 주머니에 있다. 그것이 인간이 삶이리라.


KakaoTalk_20191014_163645943.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 읽는 우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