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오랫동안 만난 친구들이 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오래 만날수록 점점 하지 못할 말들이 많아졌다. 비교, 질투, 다름 속에서 우리는 말 대신 침묵을 고른다. 친구의 사정이 달라지고 나의 사정이 달라지면서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원숭이처럼 할 말을 골라내야 했다. 말이 얼마나 독한지 경험한다. 사람의 고통은 절대적이지 않다. 가난한 아이의 눈에 부자 아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부자 아이에겐 다정한 아빠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친구이기에 삶의 대부분이 비교되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는 잘 포착하고 있다. 우정이란 이름으로 가려진 인간의 갈등과 복잡한 감정 상태를.
은중과 상연은 신도시로 이사 온 상연이 은중의 반으로 전학 오면서 역사를 만들기 시작한다. 은중의 어머니가 상연의 집에 우유배달을 목적으로 요청하지도 않은 이사 전 청소를 말끔하게 해 주며 상연의 엄마와 친밀해진다. 은중의 옆반 담임이었던 상연의 엄마는 아름답고 고상할 뿐 아니라 은중에게 다정하다. 그런 엄마를 보는 상연의 마음은 복잡하다. 항상 관심의 중심이어야 하며 누구보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 상연은 지는 걸 싫어한다. 제비 '연'이 이름에 들어갔기 때문에 장래희망이 날라리라고 말하는 상연은 금세 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7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은중은 우유배달을 하며 은중 남매를 키우는 엄마와 사는 평범한 소녀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상연은 화려하고 똑똑하며 예쁘고 남학생들의 시선을 한목에 받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은중은 상연의 마음을 모른다. 상연이 자신을 얼마나 부러워하며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지. 둘은 그런 속내를 감추고 친해진다. 평생을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서로를 바라본다.
둘의 관계에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 사람은 언제나 '상학'이었다. 하나는 상연의 오빠, 하나는 은중의 남자친구, 동명이인의 존재다. 상연에게는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보여준 적 없다는 기억을 준 상학이란 이름을 가진 오빠, 자신의 첫사랑이자 삶의 동력이 된 은중의 남자친구인 또 다른 상학이란 남자다. 은중의 첫사랑인 상연의 오빠는 자살을 했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에겐 깊은 상처로 남아있고 이 세 사람의 관계는 현재, 지금의 은중 삶의 모든 까닭이 되어 있다. 드라마는 여성들이 어떻게 감성을 나누고 그것들 때문에 어떻게 갈등을 겪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잔잔하면서도 인간 내면의 질투와 슬픔, 사랑과 우정을 잘 보여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2025년 초에 읽었던 또 다른 두 여인 '김섬과 박해람'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타투이스트 직업을 가진 자유분방한 김섬은 박해람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 프랑스에 있는 애인을 따라 파리로 떠난 해람의 몫으로 집값을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 남자 친구가 있는 파리에서 무관심과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남자 친구와 헤어진 박해람은 지친 몸을 이끌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다.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놓인 건 그렇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체류 문제를 겪은 후 해람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서로 다른 성향의 친구였던 두 여자가 각각의 삶을 사는 모습, 그리고 잠깐의 해후 후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소설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이 결국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은중과 상연'에서의 두 사람이 너무나 질긴 운명으로 이어지는 것과 다르게 '김섬과 박해람'은 시간의 무게로 각자의 길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두 편은 여성의 우정을 다뤘지만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끈적끈적한 관계의 질긴 생명력을 '은중과 상연'이 보여줬다면 그렇게 각자의 길로 가게 되는 두 사람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끊어지는 인연을 담담하게 보여준 게 '김섬과 박해람'이다. 그런데 나는 두 작품에서 각자가 사는 삶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린 여자들이 겪는 삶의 무게, 부침을 겪는 두 여자 상연과 박해람의 모습에서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뛰어난 미모와 두뇌를 가진 상연은 결국 방탕한 아버지가 잃은 부를 얻게 되지만 그녀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프랑스라는 낯선 곳에서 마주하게 된 익숙했던 사람의 돌변으로 얻은 박해람이 상실한 것은 무엇인지. 결국 보잘것없다고 여겨졌던 여기, 소소한 삶의 모습으로 버틴 사람들이 보여준 반짝이는 게 무언지.
여성들은 복잡하지만 그러므로 더 다양하고 현란한 삶의 무늬와 색깔을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여자 팔자 뒤웅박팔자'라는 말을 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삶이든, 타의에 이끌려 사는 삶이든 여성들은 이 세상에서 견뎌내며 사는 남성과 공존하는 존재이다. 남자 하나 잘 만나 팔자 피는 여자, 들조차 견뎌야 할 무게가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무게조차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은중을 부러워한 상연은 간과한 게 있다. 은중이 상연이란 존재로 깨어남과 동시에 얼마나 치열하게 평범한 자신의 삶을 살아왔는지, 그러면서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결정권을 쥐고 놓지 않으려 애썼는지를. 상연이 은중의 프로젝트를 가로챘을 때 그녀를 지지해 줬던 경감독이 '재능 많은 너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 네가 든 칼에 네가 다칠 수도 있다.'라고 하는 대사는 '나는 지금 칼을 쥐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하나도 내가 아깝지 않다.'라고 말하는 상연의 대사와 함께 인상적이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것, 나를 아깝게 여기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치열한 전쟁과도 같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