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오랜만에 이탈리아 음식을 했다. 가끔 파스타를 식사로 했지만 아침만 집에서 먹는 아이 때문에 간편식 위주로 했게 됐다. 추석에 모처럼 모인 식구를 위해 갈비며, 전, 나물을 만들다 보니 음식하는 즐거움이 새삼스럽게 올라왔다. 오랜만에 라자냐를 만들어본다. 베샤멜 소스와 볼로네즈 소스를 만들어 켜켜이 라자냐 파스타면 사이에 넣고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뿌린다. 역시 오븐에 구운 라자냐는 맛있다. 볼로네즈소스에 페페론치노를 뿌려 매운맛이 올라오니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라자냐가 깔끔한 뒷맛을 준다.
음식을 만들고 먹은 식기류를 바로 씻고 저녁산책을 나가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쉽게 흔들리거나 불안을 안고 살지 않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걸 본적이 있다. 행위의 초점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능력의 사람의 뇌가 갖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성공의 기준이 어느 순간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니라 그가 이룬 성취도로 판단하게 됐다. 성취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취를 하기 위해 간 길이 비도덕적이라면 비양심적이라면, 그럼에도 그는 성취한 것만으로 우리의 모범이 될까. 모범이 되는 사람이 더이상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과연 존재 중 가장 독보적 존재일까.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란 정의를 내린 인간들은 그런 가치가 있게 존재하는지 물을 일이다.
'지루한 지구에서 한참 높이 올라가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대자연이 과연 한 점 먼지에 불과한 이 지구에 자신의 아름다움과 온갖 가치를 다 퍼부어 놓았는지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이 지구만큼이나 사람들이 잘 살고있고, 잘 꾸며진 세계가 한둘이 아니라 여럿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위대하다 일컫는 것들에 찬미를 보내지 아니하게 되고, 또 일반 사람들이 정성을 쏟아 추구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오히려 하찮게 여기게 될 것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6장 들어가는 글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말이다. 지구를 우주 속의 푸른 점이라 불렀던 칼 세이건과 같은 천문학자들은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영화가 아무리 화려해도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 우주의 시간으로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