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by 이성주

벽조목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말한다. 대추나무 자체가 단단해서 주로 방망이와 베틀의 '북'을 만들 때 사용한다. 게다가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성질이 더 단단해지고 신령이 깃들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예로부터 벽조목은 도장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우연한 벼락 한 번이 대추나무의 미래를 결정한 것이다. '우연한 여행자'라는 소설책만큼 '우연한 만남'이 낭만적으로 들린다. 우연함은 '필연'이란 결과를 끌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은 우연이 겹친다. 늦잠, 연착하는 기차, 우연히 들어가게 된 역사 깊은 식당, 그리고 우연한 만남. 공간도 그러하다. 계획하지 않고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가다 만나게 된 장소. 지난 연휴에 나는 일본의 교토를 다녀왔다. 이른 아침 산책에서 발걸음은 도심에서 낯선 한 절로 옮겨졌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절 '혼노지'는 일본 역사에서 꽤 의미 있는 절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의 기습으로 자결한 '혼노지의 변'의 현장으로 유명하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문장은 일본에서 꽤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한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혼노지의 변'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앞두고 오다 노부나가가 죽음으로써 잠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권을 잡고 일본을 통일하고 이후 정치 체제 전환을 가져온 일대 사건이다. 조선에게 '임진왜란'이란 역사적 사건을 이끈 주요 인물이 '혼노지의 변'이 없었다면 어쨌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만약'이란 가정을 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여행에서 우연히 들르게 된 절에서 나는 '만약', '만약'을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의미 없는 되뇜이었지만. 결론은 우연이 가져온 필연의 결과들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가장 아끼는 부하에게 반역의 기회를 준 것도 스스로 자결한 사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권을 쥔 것도, 그가 무사들을 이끌고 명을 정벌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 사건도 결과론적으로 혼노지에서의 사건으로 해서 벌어진 필연이다. 미쓰히데의 반역 원인은 밝혀진 게 없다. '혼노지의 변'은 우연이 아니지만 굳이 지금도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난을 일으킨 미쓰히데의 선택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오다 노부나가 역시 명나라 정복의 계획이 있었지만 1592년의 임진왜란은 더 미뤄지거나 더 앞서 벌어지거나 했을 것이다. 그럼 역사는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미리 계획되지 않았던 곳으로의 발걸음이 가져온 수많은 사고의 가지들. 벽조목의 미래와 혼노지라는 공간의 미래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전혀 다른 성질의 사건으로 나는 '우연'과 '필연'으로 엮는다. 세상의 수많은 일은 이처럼 우연히 벌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벼락이라는 거대한 우연을 육신에 새겨 단단하게 침묵하는 벽조목처럼, 혼노지의 불길 역시 일본과 조선의 역사를 되돌릴 수 없는 궤적 속에 고착시켰다. 이 섬뜩한 인과율 앞에서 나의 사소한 선택이나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에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경건하게 가져야 할 마음은, 나의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벽조목보다 단단한 상흔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하며 매 순간 더 신중히 발을 내딛는 것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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