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혼자 먹기 위해서 음식을 합니다. 보통 새로운 음식은 가족을 위해서 하는 경우지요. 그런데 나만을 위해서 요리를 할 때가 있어요. 한식을 할 때도 있고 양식을 할 때도 있어요. 번거롭지만 오롯이 내가 상을 받기 위해서 식재료를 다듬고 향신료를 이용하고 불 앞에서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도록 요리를 합니다. 그중에 이태리 요리는 그나마 손이 덜 가는 편이에요.
파스타를 하기 위해서 올리브유를 두릅니다. 버섯과 양파, 파프리카 거기다 매운맛을 내기 위해서 고추를 볶습니다. 다 볶아지면 바질페스토와 굴소스를 넣고 양념을 한 프라이팬에 이미 삶고 있었던 파스타면과 면수를 넣어 다시 섞어줍니다. 바질의 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둥글고 오목한 넓은 접시에 파스타를 먹기 좋아 담습니다. 꽃무늬가 있으면 더 보기 좋겠지만 아무 무늬가 없는 흰색 접시라도 상관없어요. 파스타만 먹으면 혹시 느끼할지 모르니까 잘 익은 열무김치를 한 입 크기로 잘라 작은 접시에 담습니다. 그러면 준비는 대충 끝난 것 같습니다. 식탁 위에 나를 위해 준비한 넉넉한 점심 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포크로 파스타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으니 이미 코를 자극한 바질향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이런 것을 천국의 맛이라고 할까요? 뒤이어 굴소스 맛의 달짝지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오늘의 요리 굿, 이란 느낌으로 충만감을 줍니다. 식사는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기 전에 나를 위한 위로고 사치입니다. 먹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살림을 하는 주부가 자신을 위해 상을 차리는 일은 드뭅니다. 보통 식구들과 함께 갓 한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지요. 그나마 약속이 있는 날은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나를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지요.
먹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영화 '삼공일, 삼공이'는 음식을 통해 내면의 불행을 읽은 두 여인의 슬픈 이야기로 공감을 얻기에 충분한 영화였습니다. 한 여자는 음식을 먹이고, 한 여자는 음식을 거부하고. 음식이 여자에게 주는 의미는 사랑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다룬 많은 영화가 있지만 그 영화처럼 슬프면서도 섬찟한 영화는 드물었던 것 같아요.
음식을 만드는 남자 셰프가 이젠 낯설지 않지만 사실 음식은 여자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음미하는 주체로서가 아닌 그저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요. 음식으로 갑질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음식에도 권력관계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날 위해 음식을 해줍니다. 대접하는 것이죠. 잘 살고 있다는 걸 축하하고 위로하기 위해서요.
오늘의 요리 주인공은 날 위한 겁니다. 일 인분의 양을 정확히 계량해서 먹고 치우니 화려하고 근사한 식당에서 먹는 식사와 다름이 없습니다. 가끔 식당이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요. 그랬더니 경험 있는 친구가 극구 말립니다. 식당을 하는 일은 어떤 일보다 힘들다, 중노동이다, 그럽니다. 누군가가 수고해서 만들어주는 그 음식이 중노동으로 완성했다니 늘 감사히 먹어야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삶에서 그들의 노동을 제공하는 것인지. 오늘은 나에게 감사하며 먹습니다. 식사 한 끼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