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품에 안습니다. 까슬까슬한 수피가 볼을 찌르지만 아프지 않습니다. 나무를 안은 나의 팔이 조심스럽듯 나무도 나에게 부드럽게 안겨 있습니다. 아니 내가 나무의 품에 안겨있달까요. 나는 오래된 나무에 정령이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 그 이야길 듣는다면 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살면서 내가 믿는 걸 포기하지 않으면 때로 선물처럼 좋은 일이 있습니다. 나무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의 정령에게 나는 빌어봅니다. 나의 오늘을 편안하게, 내 가족의 오늘을 편안하게, 내 이웃의 오늘을 편안하게, 그리고 날 모르는 이들의 오늘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타인을 위한 기도는 정말 힘이 강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에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세상의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무를 꼭 끌어안는 건 오래된 나무가 살아온 세월 때문입니다. 그 나무가 버텨온 시간과 사건들이 나무의 나이테가 되었을 겁니다. 사람들에게도 시간과 사건이 나이테가 되어서 이 세상을 버텨낼 힘을 달라고 나무를 품에 안고 기도하는 겁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편지를 띄어 위로를 하듯이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나무의 위로를 받고 나무의 도움을 받습니다. 내일까지 나는 힘이 납니다. 그건 내가 믿는 신에게 하는 기도와는 다릅니다. 나무가 버텨온 세월의 힘을 빌려달라는 거지요. 어제는 비가 많이 와서 나무는 힘 있게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일 겁니다. 그 힘을 잠깐 얻어옵니다. 오늘은 편안합니다. 지금까지도.
하루는 집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리움이 밀려드는 겁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교신할 방법이 없습니다. 핸드폰을 꺼내서 어머니의 생년월일을 꾹꾹 누릅니다. 핸폰 저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혼잣말을 시작합니다. 아니, 어머니와의 교신을 합니다. 저쪽에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지만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고 어느 순간 끅끅하며 가슴 속에서 슬픔이 밀려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래도 귀에 대고 있는 핸드폰 속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다 울 때까지 내가 다 소리내서 말할 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던 어머니처럼요. 어머닌 그렇게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 큰 힘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정신건강학상 혼잣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건 좋지 않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스스로에게 괜찮아, 넌 여전히 잘 하고 있어,라고 양팔로 나를 끌어안고 다독거려주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왜냐하면 날 힘들게 하는 거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나에게 힘을 주는 건 누가 나에게 힘을 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세상은 내가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존재로 응답합니다. 나는 그래서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누군가 내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처럼.
바다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면 폭풍우 칠 때 가봐야 합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없고 물이 몸을 뒤집어 제 피부의 결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육지를 삼킬 것처럼 자꾸만 육지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평화로운 얼굴은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더라구요. 평화롭고 아름다운 얼굴 뒤에 그는 격정과 분노도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전혀 다른 얼굴로 당황하게 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백 개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한 사람입니다. 백 개의 얼굴, 백 개의 감정을 지닌 사람은 오히려 건강할지 모릅니다. 가끔 표정 없이 백 개의 감정을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하고 하나의 감정으로만 인식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갑갑함을 느낍니다. 타인의 고통에 웃음으로 대화를 나눈다거나 대화에 자기 중심적인 사람과 이야기할 때면 나도 모르게 힘겨운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나는 많이 웃는 것을 좋아하지만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편안합니다. 그리고 말 없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 그의 얼굴에 풍성한 표정이 있는 사람과 있으면 편안합니다. 거울과 마주 합니다. 입가에 미소를 지어봅니다. 누구에게 요구하고 싶은 얼굴을 내 얼굴에서 발견하고자 합니다. 태풍이 밀려왔던 바다처럼 격정적으로 표정을 실어봅니다. 입가를 찡그리기도 하고 눈가에 주름을 잡아보기도 합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입술을 씰룩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함박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다시 평온한 얼굴이 지어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다양한 표정처럼 내 얼굴의 표정을 통해 편안하게 말을 걸기를 기대합니다. 또 그런 얼굴의 사람을 만난다면 말을 걸어 볼 요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