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살고 있었네

by 이성주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어제는 '82년생 김지영'을 봤습니다. 나는 82년도에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졸업 후 작은 회사에 취직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만 두었습니다. 월급이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내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꽤 오랜 백수 생활로 이뤄지고 대학 입학 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이 결국 결혼할 때까지의 직장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공부한다고 몇 개월을 보냈고 작은 곳에 영업직으로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결국 결혼할 때까지 다니던 직장이 가장 오래 다니던 직장이었습니다. 약 2년에 걸쳐 다니던 직장에서 나는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처음엔 나의 무능력을 탓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 직장을 그만 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것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도. 그런데 성실하게 공부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친구들이 좋은 곳에 취업했어도 결국은 회사를 그만 둬야 하는 현실을 봐야 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육아였지만 imf를 거치며 맞벌이 하는 여성들에게 퇴사를 강요하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주된 이유였습니다. 당시 남자가 생업을 책임져야하는 게 우리 사회의 통념이었으니까요. 사실 그간 한국 사회가 발전한 기반에는 능력있는 남자들이 그 위기들을 잘 버텨주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때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뭐 때문일까요. 어제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그 가슴의 답답함이 또 밀려왔습니다.


'맘충'에 대한 용어를 들었을 때 육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던 나는 한 아이가 아프면 영락없이 세 아이 모두가 아픈 일을 반복적으로 겪어야만 했습니다. 한 번은 세 아이 모두 감기에 걸려 큰 아이를 걸리고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앞으로 안고 택시에서 내린 후에 가방이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가방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었죠. 병원에 갈수도 집에 갈수도 없는 갑갑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가 있는 엄마는 그럴 때 망연하게 그냥 있지 않습니다. 어쨋든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사람은 엄마니까요. 어디든 들어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당장 거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햇살 속에 있으며 막연하게 서 있는다 해도 누군가 나를 집으로 데려가거나 아픈 아이들이 낫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들이 어디 한 두번이었겠습니까.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갈데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아이들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니까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책임감, 한 아이를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아이가 겪는 모든 아픔들을 지켜보고 같이 아파야 했고 나도 방황했습니다. 그때야 알았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엄마 역할을 하기까지 엄마가 나와 함께 아프고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요.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스스로가 배우고 터득한 지혜가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일정 부분 부모의 역할이 컸다는 걸 우리 모두는 인정합니다. 특히 엄마의 보살핌은 더더욱 크지요. 엄마는 늘 그렇게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은 매번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망설일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로 아이는 어느 틈에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엄마는 성인이 된 자식에게 감사하지만 성인이 된 자식은 자신이 엄마가 되기 전까지 엄마나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해 막연함을 느낍니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자라서 부당한 대접을 받아서,라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는 듯합니다. 사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간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와 다른 데서 오는 막막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는데 내 역할이 얼마나 클지에 대한 두려움, 이미 쌓여왔던 나의 이력이 그대로 백지가 되는 상태, 정유미라는 배우처럼 예쁜 엄마도 있지만 아이 엄마가 되면 예쁨과는 거리가 멀어지며 낯선 얼굴의 여자와 마주해야 합니다. 또 보이지 않는 벽처럼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만 할 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서 지속됩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이상한 건 남자들이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겪으며 집에서 겪는 여성들의 고통을 왜 공감하지 않는지 의아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을 살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때로 숨이 탁탁 막히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그 문제를 해소할까요. 82년생 김지영이 느끼는 숨 막히는 상황은 말 할 수 없는 고통에서, 해소되지 않는 고통이 지속되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여성들조차 상황마다 다르기에 그러한 고통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아이의 수가 다르고 아이의 성향이 다르고 같이 사는 배우자가 다르고 결혼한 상대의 집안이 다르며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고통을 간과하기엔 한 사람의 존재는 미약하지만 한 사람의 상처받은 사람이 미치는 영향은 클 수 있습니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한국 사회에서 여성 하나로 정의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현재를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 변화의 시대에 선 우리 모두의 고통이고 답답함일 것입니다. 우린 그동안 개인의 고통에 대해 너무나 무감하게 살았습니다. 모두가 잘 사는 게 모두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거긴 경제적인 것밖에 없었습니다. 잘 살면 모든 것이 허락됐습니다.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남았습니다. 공부만 잘 하라고 아이들에게 요구하듯이. 이젠 과정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가 봅니다. 82년생 김지영뿐만 아니라 82년생 김철수도 아플 겁니다. 이제는 그것이 여성의 문제이든 남성의 문제이든 우리가 이제부터 진짜 잘 살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바꿔야 할지, 노력해야 할지 고민할 때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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