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

독서일기 2

by 이성주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고/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는 르네이다. 단단하고 뾰족한 털로 덮여있지만 그 안은 보드라운 살이 숨겨져 있다. 우아함을 감추고 있는 고슴도치의 단단함은 르네의 삶을 표현하는 아주 적절한 단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신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만난다는 것의 기쁨과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과 만날 기회를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소설을 덮으며 안타까움과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난 르네로 인해, 그 시간이 너무 짧다는 사실 때문에.


예술, 그것은 다른 리듬 위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삶이다.p213


예술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도 하나의 예술이다. 예술이 뭐 별건가. 따지고 보면 우린 엄숙주의에 빠져 예술, 철학, 문학 등을 숭고한 의식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진실로 향유할 수 있는 솔직하고도 참된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르네처럼 혼자 독학하며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식으로 무장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 있으면서 아는 척할 때일 것이다. 르네가 수위로 일하는 곳은 상위 1%라 할 수 있는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다. 그곳은 주민들이 바뀌지 않는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논란이 있는 한국 사회처럼 프랑스도 더 이상 계층 이동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인 것이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은 그들의 재무 능력만큼이나 우수할 것이다. 팔로마의 언니 클롱브가 명문 파리 사범학교에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보이는 행동을 봐라. 팔로마는 언니 클롱브를 경멸하고 싫어한다. 르네가 수위로 일하고 있는 건물의 거주자 대부분이 그렇다. 마약에 빠져있거나 거만하거나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이다. 르네는 그네들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덥수룩하고 뚱뚱하고 거친 보잘 것 없는 수위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그녀는 남편과도 진정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그녀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그녀의 진짜 모습에 관심이 없었다. 아름다운 르네의 언니 ‘리제트’가 가난한 부모 밑에서 아름다운 미모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재산인지, 부자에게 어떻게 버림받았는지 르네는 어린 시절 지켜봤기 때문이다.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취급당하는지 알게 된 르네는 자신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진즉에 깨닫고 배움을 중단하고 독학을 선택한다. 늙은 르네의 현재 모습은 팔로마다. 팔로마는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1등을 독차지 할 정도로 똑똑한 소녀다. 그녀는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직관력과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위선 덩어리고 모순투성이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사는 건물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하려고 한다. 성장을 멈추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팔로마와 외부세계와 벽을 쌓고 스스로 공부할 것을 선택한 르네는 어떤 면에서 매우 비슷한 존재다. 두 사람의 목소리로 적힌 글을 보면 르네와 팔로마가 한 사람으로 읽히기까지 하다.


가난은 낫이다. 가난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교의 능력을 다 베어버리고 현재의 모든 악랄함을 견뎌낼 수 있도록 모든 감정을 다 씻어버리며 우릴 텅 빈 상태로 만든다. p404


나는 우리 가정의 이기주의와 허위를 말한다.p357


결국 그들도 자신들만의 원시적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태국 어부들의 믿음과는 다른 줄 안다. 부자에, 교육받고 합리주의적인 프랑스인들이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 못한다.p362


르네가 가난 때문에 겪었던 처절한 고통은 팔로마가 자신의 가정에서 보고 겪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닿아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이 어떤 것이냐가 중요하지만 가난한 이에겐 그 본질을 볼 기회가 없고 부자에겐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가난한 이들은 무지로 부자들은 위선으로 삶의 진실을 대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게 어디 다르랴. 부자든 가난한 자든 결국 우리가 삶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 마주해야 하는 단 하나의 진실은 죽음이다.

인간은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짐승이라는 것, 고유의 사고로 세상을 이루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p348


아마도 이것이 살아 있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을 추격하는 것.p384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스쳐가는 바로 그 순간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아주 찰나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본다.p384


하지만 우리 역시 임무를 완수한 후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꿀벌일 뿐이다.p333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줄을 긋고 또 그었다. 그러다 나는 어느 부류의 사람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어쩌면 나는 르네가 살고 있는 건물의 입주자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팔로마의 어머니가 하는 위선적인 태도는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는 척 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그리고 그것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간 세계에서 강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고 또 말할 뿐이다. p73


쏟아지는 티비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에서 눈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진실해 보인다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손이 익숙해 보이고 상대에게 보이는 감정 표현이 솔직해 보인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실제 생활이라고 하는데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무미하다. 언제부터인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넘쳐나는 티비를 켜지 않게 됐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가짜들은 말이 많다. 그들은 말로써 얻은 권력을 부조리하게 이용한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보고 싶지 않다.


인간은 행동으로써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써 힘을 갖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언어로 지배하는 것이 궁극의 능력인 세상에 살고 있다. 정말 끔찍하다. 사실 우린 먹고, 자고, 새끼를 낳고 영역을 차지하고 그 안전을 도모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영장류다. 그리고 그것에 가장 재능 있는 자들, 즉 우리 가운데 가장 동물적인 자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말만 잘하는 사람들한테 농락당한다. p75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가.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말로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이 많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그런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똑똑하게 말만 잘하는 사람들의 형식과 가면 속의 얼굴은 보지 않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화려함과 그들의 능력만을 칭송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과 같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더 역겨워 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삶이 부당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이 위대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이 적어도 가진 자들을 증오하는데 있어서는 하나라고 생각했다. ~~ 가난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또 다른 가난한 사람들이다. p168


슬픈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나는 요즘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가를 고민한다. 그건 내 평생 내게 던졌던 질문이다. 내가 비록 어떤 면에선 팔로마의 엄마나 언니와 같이 위선적인 면이 있지만 분명 르네와 같은 면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나이 먹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던 건 친구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미래를 보게 된다는. 그제야 나이 먹은 사람과 젊은 사람들의 차이점이 분명해졌다. 나이 먹은 사람은 과거를 보고 젊은 사람은 미래를 본다. 나이 먹은 사람은 자신의 삶이 괜찮다고 하고 젊은 사람은 불안해 한다. 나이 먹은 사람은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하고 젊은 사람은 사는 것 자체가 다 모험이다. 나이 먹은 사람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려 하고 젊은 사람은 자신이 살아야 할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만일 네가 미래를 잊는다면 너는 현재를 잃는다.p173


그렇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린 절대 우리의 확신 너머를 보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그 확신 너머와 마주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p201)’의 말처럼 우린 우리 앞에 있는 미래가 분명 있는데도 미래를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에 집착해서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의 고민을 외면하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짧다는 이유 때문에.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한다. 그건 젊은이들만 느끼는 절망감이 아니다. 나 역시 상식이 상실되어 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내 아이들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문학을 한다고 해놓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소설은 철학에서 시작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본질을 묻고 있다. 결국 르네가 만난 기쿠로라는 인물을 통해 그녀는 마음을 여는 법을 알게 되었고 이 우스꽝스런 세상에서도 진실을 직면하고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보석과도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그와 친구과 되었고 더 큰 관계로 진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다만 그녀의 그 시작이 너무나 짧게 끝났지만 중요한 건 삶의 의미를 잃은 팔로마에게 더 이상 불을 지르고 자살을 꿈 꾸는 소녀로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르네는 죽었지만 팔로마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젊은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하다고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나는 또 다른 르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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