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허기진다

by 이성주

고기 한 점과 김치 한 조각


"여보, 술 상 좀 차리지?"

아버지가 집에 손님을 모시고 오는 날은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그래도 간혹 연락 없이 집에 손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가 있었다. 요즘은 집에서 손님을 대접하거나 청하는 일이 별로 없지만 늦은 저녁 시간에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은 무례해 보였고 어머닌 당황하는 게 역력했다. 물론 아버지의 손에 끌려 오신 손님도 난처한 얼굴이었다. 아이 둘과 이부자리를 펴고 누우려다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손님 때문에 어머닌 옷매무새를 갖추고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해 갔다.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아버지 술상을 차리시는 어머니 뒷모습은 피곤해 보였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손님이 왔을 때 기대하는 것은 크게 차린 한상일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크게 한 상을 차리는 경우는 특별한 날 아니고는 별로 없었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많은 음식을 차리면 버리는 게 더 많아서였다. 어머닌 유달리 검소했고 먹는 것도 기본 생활 습관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위해서는 같은 반찬을 두번 이상 상에 올리지 않았고 항상 먹음직스러운 메인 요리와 기본 김치 하나, 그리고 새로 무친 나물 한두가지가 전부였다. 어머니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맛있었다. 다섯가지의 색, 하얀 도라지 볶음에 초록색 시금치나물, 붉은 김치와 파란등 생선, 그리고 흰쌀밥에 미역국, 이런 식이었다. 손님이 왔을 때 어머니의 밥상도 마찬가지였다. 시장한 시간이면 어머니가 직접 담은 고추장과 묵은 김치와 설탕, 참기름으로 버무린 비빔 국수와 맑은 동치미가 차려진 밥상이었고 술상이 필요하면 땅콩을 둘둘 말은 오징어와 쥐포, 아니면 급하게 데친 오징어와 초고추장이 전부인 상이었다. 손님은 어머니의 상이 맛있다기 보다는 늦은 시간에도 싫은 내색 없이 상을 차려 내오는 어머니의 마음을 고마워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던 것은 귀찮아 하거나 싫다고 짜증을 부리지 않았던 어머니의 성품이었다. 집에 손님이 오는 것보다 밖에서 만나 대충 밥을 사 먹고 커피도 분위기 찾아 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는 저녁 먹을 시간에 아버지가 손님을 모시고 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의 메인 요리는 돼지고기 수육이었다. 새로 만든 김치에 어머니가 삶은 수육을 먹을 생각에 기대에 부풀었던 나는 아버지가 모시고 오신 손님이 원망스러웠다. 손님과 한상에 앉아 저녁을 먹지 못할테니 수육을 먹기는 틀렸다 싶었다. 우리들은 달걀 프라이와 김치, 김이 놓인 상을 받았다. 평상시에 좋아하던 달걀프라이도 그날따라 맛이 없었고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아무 맛이 없었다.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만이 속상할 따름이었다. 손님은 무슨 일인지 아버지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늦은 시간이 되어야 돌아갔다. 그 사이에 나는 잠이 들은 모양이었다.

"일어나 고기 먹어라."

어머니가 귀에 대고 '고기'라고 말하자 눈이 번쩍 뜨인 나는 얼른 일어나 앉아 눈을 부비고 '내가 먹을 고기가 남았어요?'하고 물었다. 어머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동생을 깨워 일으켜 세워서 나갔다. 마루에 놓인 고기 몇 점과 김치 몇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니네들 거는 엄마가 따로 챙겨놨지."

몇 조각 되지 않은 고기지만 김치와 먹는 그 시간이 갖는 의미는 남달랐다. 분명 어머니는 한 점도 드시지 못했을 터였다. 허겁지겁 고기를 먹고나서야 어머니는 한점도 드시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먹었어'라고 말하는 듯한 어머니의 표정은 나를 향한 답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당시의 우리집 살림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을.


된장을 풀고 먹다 남은 술과 월계수 잎 몇 조각, 마늘을 넣고 삶은 돼지고기 수육은 이제 가장 쉽고도 흔한 음식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요리지만 언제나 따뜻하고 든든한 추억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어쩌면 가장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발휘되지 못한 음식이지만 여전히 배부른 기억을 줄 수 있는 음식이 수육이다. 김장김치를 할 때, 특별한 날에 했던 돼지고기 수육은 이제 어머니의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해먹는 힐링과 추억의 음식이 됐다. 어머니도 나이를 먹으면서 고기를 삶을 때 소주를 넣는다거나 커피알을 넣는다거나 방법이 조금씩 바뀐 것처럼 나만의 수육 비법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쩔 때는 적포도주와 마늘 월계수잎만 넣고 삶을 때도 있고 어머니의 방식으로 삶을 때도 있고 전통적 방식으로 삶을 때도 있지만 수육이 내 입속에서 씹히는 맛은 언제나 한가지다. 부자가 된 듯한 든든함. 오늘도 나는 수육을 삶았다. 오늘은 적포도주 대신에 먹다 남긴 화이트와인을 넣고 삶은 수육이다. 고기 한 점과 김치 한 조각을 입 속에 넣고 씹는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고 싶어하는 허기진 마음에 풍부한 고기의 향과 맛이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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