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썸원 썸웨어(someone, some where/DEUX MOI)
연애를 안하던 시절, 아니 연애를 못했던 시절에 나는 연애를 못하는 나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다. 그건 연애 뿐이 아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관계가 조금만 삐걱거려도 내 성격에 문제가 있나를 고민했다. 지금에야 연애에 관한 많은 책들이 '그건 네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정말로 내가 문제였을까.
택배 물류창고에서 근무하는 '레미(프랑스와 시빌)'는 직장의 자동화씨스템에 의해 동료들이 모두 해고당하는 상태에서 자신에게만 다른 기회를 준다는 말에 엉겁결에 회사에 남게 된다. 그에게 회사에 남는다는 안도감은 잠깐이고 동료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에 레미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연구소에 근무하는 '멜라니(아나 지라르도)'는 연구 프로젝트를 발표할 기회를 얻는다. 그 발표는 투자가 전제된 것이고 멜라니는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 멜라니 역시 그 부담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웃하는 건물의 같은 층에 사는 두 남녀는 동선이 일치에 늘 스쳐지나가지만 화면 안에서 그들이 만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은 영화가 끝날 무렵이다.
레미는 어릴 적 동생이 죽은 상처가 있다. 동생과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한 레미는 늘 동생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동료들이 집단 해고를 당했는데 자신만이 남았다는 것이 동생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고 결국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깊은 슬픔과 죄책감은 그의 현재를 옭아매고 사람과의 관계를 망친다.
멜라니는 1년 전 기욤이란 애인과 이별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자매를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성장한 멜라니는 기욤에게 자신이 없는 연애를 했다. 기욤에게 모든 걸 맞추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자신을 사라지게 만들고나서야 싫증을 느끼고 떠난 기욤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다.
레미와 멜라니는 어릴적의 기억이 준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해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그리고 그리움은 그들이 만나야 할 인연이라는 것을 관객이 느끼게 한다. 그들이 언제 만날까는 영화를 보는내내 관객의 조바심을 자아내게 한다.
상처없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그들은 행복하고 결코 상처주는 일이 없을까. 나는 그 대답을 알 수가 없다. 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만나 얼룩진 그들의 상처로 인해 불행하게 될까에 대한 답도 모른다. 세상 일이란 게 상상하는대로 되는 것 같지만 의외로 사람의 관계라는 게 예측되로만 되질 않는다. 중요한 건 각각이 상처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고 그 상처를 극복한 사람들, 새로운 상처를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잘 자란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을 잘 극복했더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온실 속 화초처럼 쉽게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개개인이 과거의 상처든 현재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영화는 레미와 멜라니가 각각의 심리 상담자(정신과 의사)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내면서 조금씩 내면의 변화를 겪는 과정과 고양이를 키우며 돌봐주는 삶을 경험하며 관계맺음에 한발자국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레미의 상처는 부모의 상처이기도 하다는 것을, 멜라니의 상처는 멜라니 어머니의 상처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로맨스 영화가 굳이 그들의 달달한 연애 과정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 방식은 이제 식상하기도 하다. 오히려 내면에 간직한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진정한 관계맺음을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결말은 다른 로맨스 영화보다 여운이 크다. 누구도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상처입지 않는 사람을 찾기보다 상처입은 사람을 찾는 게 훨씬 쉽다. 우린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진지하게 상대에게 다가가야 하는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녀간의 혹은 동성간의 관계 맺음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둘이 다른 건물에서 나란히 밖을 내다보는 스틸컷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 서로를 모르는 것. 그러나 알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