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닌데 유독 나에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넌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소리만 들으면 부정하고 싶어진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타인이 나를 좋아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난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는 말을 듣길 더 원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내가 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어때서, 더 많이 좋아하는 게 뭐 어쩌라고. 그렇게 생각하고나선 사람들이 같은 말을 반복하면 말한다. "그래 나 사람 좋아해. 그래서 너도 좋아해. 너가 싫어해도 할 수 없어." 돌아오는 대답이 싸해도 상관없다.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고 상처받길 반복한다. 사춘기의 아이들도 청년기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람들과 갈등을 겪으며 내게 조언을 구할 때 나는 그렇게 말한다. 현재 네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라고. 우린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지만 결국 언젠가는 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운이 좋게도 끝까지 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피천득님의 '인연'이란 수필에서 읽다 보면 어릴적 좋아했던 소녀 아사코와의 세번째 만남을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헤어질 때 그림자가 슬며시 사라지듯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물리적인 힘에 의해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그 사람이 몹시 궁금하다. 어찌어찌해서 다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인'사람들이 많다. 만남의 지속 시간, 인연의 지속 시간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다. 같이 있을 때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같이 있을 때 고통스러웠다면 그것을 잊음으로 족하다. 다시 이어갈 필요가 없다. 헤어진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그것도 역시 괜찮다. 인연이 그걸로 끝이 아니었기에 다시 만난 것이리라. 그럴 때 내가 그를, 혹은 그녀를 더 좋아했더라면 다시 만나더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줬으니까.
그럼에도 관계가 찜찜하니 자꾸만 남는 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처받은 한 인간이 남기 때문이다. 그럴 때 모든 관계에 유효기간에 대해서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유효기간이 없는 건 아니다. 체념이란 이럴 때 필요한 말이다. 체념, 품었던 생각이나 기대, 희망 등을 아주 버리고 더이상 기대하지 않음의 상태를 배워야 한다. 미움받는 걸 당연시하긴 힘들어도 미움받는 관계를 끊어낼 때 좋은 관계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나쁜 관계를 빨리 끊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훨씬 편하리라. 그렇지만 어떤 인간관계든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 용기를 낸다해도 어렵긴 매 한가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붙잡는다고 잡히지 않는 맘 떠난 연인처럼 모든 관계는 끝을 전제한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인연의 유효기간,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