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페 벨에포크'를 보고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갈까. 사실 시간여행은 많은 사람의 바람이지만 그걸 실현시킬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먼 미래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놀란 감독의 영화 속에는 꿈 속에도 들어갈 수 있고 시간을 리버스해서 인버스할 수도 있으니까. 많은 영화들이 시도한 걸 보면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엔 정말로 그게 가능할지도.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그 시간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역할극으로라도 그 시간을 불러낼 수는 없을까. 물론 기억이 왜곡되는 참담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 시절'이란 프랑스어이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종결된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까지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유럽의 한 시대를 일컫는 용어라는 걸 영화를 보고 이런 저런 정보를 찾다 알게 되었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살면서 자신이 가고 싶어하는 시간을 그대로 재연해주는 카페다. 내가 살아왔던 과거일수도 있고 역사상 가고 싶은 시간대일 수도 있다. 앙트완은 사람들의 시간 여행에 대한 열망을 사업으로 완성한 사업가이다. 앙트완 역을 맡은 배우는 자꾸 봐도 패트릭 댐시를 닮았는데 '기욤 까네'라는 프랑스 배우라고 하니 도플갱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아내 마리안 드르몽과 아들이 마련한 자리에서 불편하게 자리를 차지했던 빅토르 드르몽은 함께 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먼저 파티에서 일어선다. 빅토르는 아내와의 관계도 그렇고 은퇴 후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위해 하루동안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이라는 초대장을 내민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빅토르는 무기력해지고 짜증만 나는 상태에서 아내의 이혼 요구를 받는다. 그리고 결국 아들이 내민 초대장을 선택한다. 그가 가고 싶은 시간은 '1974년 5월 16일',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영화는 빅토르의 젊은 시절과 빅토르의 사랑하는 여인 역을 대행하는 마르고와 앙트완의 사랑 두 개를 대비시켜 보여준다. 마르고는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앙트완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는데 앙트완은 마르고를 잊지 못한다. 빅토르의 젊은 연인 마리안 역을 하는 마르고를 보며 앙트완은 더더욱 그녀와의 관계에 집착하지만 오히려 마르고는 앙트완의 극단적인 이기심만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잘라낼 수는 없다. 빅토르는 마리안으로 분한 마르고에게서 마리안을 발견한 것인지 마리안이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상황극에 심취해 막대한 돈까지 쓰게 된다.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순간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내게 가장 아름다웠던,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느냐고.
빅토르를 연기한 다니엘 오떼이유는 언제나처럼 묵직한 역할을 성실하게 연기한다. 그의 연기에는 신뢰가 간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영화치고는 비교적 쉽게 정리가 된 '카페 벨에포크'에서의 연기는 더욱 더 안정적이고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내게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 거 같다. 아이들을 키우며 전전긍긍했지만 그때는 젊음이란 것이 내게 가장 큰 무기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빅토르 역시 은퇴와 더불어 관계의 삐거거림, 자신에게서 더 이상 남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아내에게서 받는 소외감 등이 삶의 무기력함과 함께 타인에 대해서 비뚤어진 행동이나 말투를 유발하고 결국 그것이 상처가 되어 부메랑이 되는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흔히 '지금, 현재'가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주는 가치를 이야기한다면 그건 천벌을 받을 소리고 공감 하나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될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나 자신이 느껴야 할 몫이다. 현재는 고통스럽고 삶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삶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어느 한 순간 가장 빛나던 때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내 스스로 잡지 못했기 때문에 모를 뿐이지. 그럼에도 여전히 현실은 각박하다. 영화에서의 빅토르의 변화가 어떤 삶의 환희를 가져올지는 모르겠다. 찰나의 환상과 같은 시간이 기다릴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절'은 그나마 가장 젊은 지금 현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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