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천장'을 읽고

책 읽는 우체통

by 이성주

"기억이란 일정한 공간이 시간의 산란 속에서 부유하다가 다시 집합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기억에는 시간의 켜가 배어있다.?" 몸의 예술가 중


"시간은 물질 같은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종종 시계의 뒷면을 열어볼 때가 있었다. 두 개의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며 시간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의 비밀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시간이란 대칭성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하나의 존재와 하나의 대상이 마주 보고 있다는. 대칭성이 오래되면 기계적인 시간이 사라지고 환각의 시간이 남는다." 고양이가 있는 거울 중


" 하나의 활자에는 과거와 미래가 겹쳐져 있습죠. 갑골문과 종정문에서부터 요란한 변형을 거친 사물의 오랜 기억이 배어 있는가 하면, 앞으로 다른 활자들과 어울려서 생성시킬 미래의 사물이 함께 깃들어 있는 거지요." 비늘천장 중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햇살이 뾰족한 시침에 걸려서 반구형 시계판에 짧고 날카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림자에 맞물려 있는 은색 시각선이 진시였다. 태영과 감영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둘 사이의 공간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산란하고 있을까. 나는 문득 그 공간에 무수한 햇살을 단 하나의 그릇에다 모아, 태양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해시계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해시계 중


"그는 발등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때문에 몸이 공중으로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서편의 구름은 어렴풋이 검은 줄무늬만 그어져 있었고 그 아래로 사각형 창문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집의 윤곽이 지워진 채 창문만 허공에 떠 있어서, 그 흰 빛 유리문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시간과 세계가 그 안에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쉰 네가지의 얼굴 중


"한 사람의 일생을 거슬러 가보면 그 삶 전체를 관류하는 한 가지 동일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온갖 풍파를 겪고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해도 그 살이를 긴밀히 꿰는 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날들을 돌아보는 이에게는 신비로운 그 실로 인해 아득히 멀리 있던 저편의 세월도 지척인양 당겨지고 단 길로 가고 있다고 믿었던 때조차 겨우 울타리 하나 벗어난 바로 옆길로 자신이 걷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오래된 전쟁 중



엄창석의 <비늘천장>엔 모두 7편의 단편소설과 중편소설이 담겨있다. 소설집 뒤편에 있는 해설에는 작가의 작품 속에 '거울'에 집중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거울은 소설의 오브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고양이가 있는 거울'에선 제목에서조차 '거울'이 들어가 있으니까. 또한 거울은 작품 속에서 화자의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접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양이가 있는 거울'에서는 사건은 있지만 범인은 없는, 추격자이면서 범죄자인 서로 마주하고 있지만 반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인물에서. 또 '쉰네 개의 얼굴'에서는 거울을 통해서 확인하는 얼굴이 도망을 다니며 변장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면서 수배전단지에 늘어나는 쉰네 개의 얼굴이 결국은 원래 그 사람의 얼굴이 사라지고 누군지 모르게 되는, 결국 엉뚱한 사람이 잡히게 되는 결과에서 김을룡이란 화자는 묻는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거울 보다는 '시간'이란 것에 집중하게 된다. 시간은 많은 예술가에게 매력적인 소재다. 또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소재기도 하고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집중하는 '현재'는 과연 현재인가라는 질문을 하다 보면 그것은 어느 순간 과거가 되어버린다. 시간을 흐른다는 개념에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다 펼쳐져 있다고 가정한다면 시간은 무엇일까.


이번에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이란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가서 미래에 일어난 사건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양자물리학에 의하면 시간은 속도의 영향을 받는다. 그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우주에서의 시간은 지구에서의 시간과 다르다. 우주에서의 현재, 즉 지금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에게 시간은 먼지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것으로쯤 이해되는 것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해서 하루, 한달, 일 년이 반복되고 그러면서 노화를 겪는 사람이 시간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다. 나는 현재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란 감독의 시간을 다룬 '테넷'이란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에서는 매력있고 학문으로서의 양자역학은 어렵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소설집 <비늘 천장>에서의 작가의 서술은 오히려 설득력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단식광대>를 연상하는 '몸의 예술가'는 카프카의 소설 만큼이나 기괴하다. 프란츠라는 단식광대가 최장 기간 단식 기록을 세우고 결국은 사람들의 무관심에서 죽었다면 현재의 단식광대는 거꾸로 비대해진 몸과 폭식을 통해 사람들 앞에 전시된다. 광대라는 직업으로 사람들 앞에 보여지는 것은 같으나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반대다. 몸을 통해서 보여주는 두 개의 정반대의 모습은 식욕을 거부하거나 무한대의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다. '프란츠가 신의 질서에 항거하려고 생명 유지를 거부했다면 그라쿠스는 신의 거울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항거하는 거죠./p32'라는 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서 드러나는 두 가지의 행위는 신의 얼굴을 한 인간이 거울을 통해 들여다 본 이중적인 모습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70년 전에 만났다는 프란츠와 자신이 만난 그라쿠스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통해 세대가 공통적으로 만나는 '단식광대'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은 과연 다른 사람일까.


'고양이가 있는 거울'은 훌륭한 수사관이자 도망자이다. 그는 수사관이란 직업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데 범죄 현장에서 양쪽 문으로 도망가는 도망자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에드가 알란 포우의 '검은 고양이'라는 작품 속에서의 고양이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범인의 일부라는 진술에서 마치 슈레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소설을 읽으면 수사관과 도망자가 전복되는 순간의 묘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작품집 안의 소설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독자 호흡의 완급을 작가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는 걸 느끼는데 안타까운 건 표제적인 '비늘천장'이나 '해시계' 등은 다른 소설처럼 전복이라고까지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시대 소설이라는 점에서 '오래된 전쟁'은 설명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 함께 편재된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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