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쉘:세상을 바꾼 폭탄 선언' 관람기
단 한 번도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들만의 것이라고도,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해본 적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모두가 페미니즘에 한 발 더 다가오게 설득하지 못하면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확신했다.p11/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벨 훅스
폭스뉴스의 제왕 로저 에일스의 성추문과 여성들이 남성 위주의 방송국 뉴스센터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이용되는지 폭로한 그레첸 칼슨과 메긴 켈리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에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신입인 케일라 포스피실이란 가상의 인물이 더해져서 뉴스의 세계가 얼마나 남성 위주이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지를 보여준다. 사건 위주로 보여주는 영화의 특성상 영화는 폭스뉴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로저 에일스의 성추행 과정을 많은 부분 생략하고 케일라 포스피실을 통해, 다른 증인들의 증언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영화 전반에 폭스사가 얼마나 보수적이며 남성중심적이고 백인 중심적인지 어쩌면 그 모습이 세계의 경찰이라고 자부하던 미국이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지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여성 앵커들이 앵커로 성공하기까지 권력이 어떻게 그녀들을 이용했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긴 법정 다툼의 과정보다 여성들이 용기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영화는 세상은 변했으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고 여전히 계속되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사실 그대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성추행의 과정일 뿐이다. 영화의 속도는 숨 쉬기가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메긴 켈리와 트럼프의 전쟁, 그레첸이 로저에게서 폭스사에서 어떻게 버려졌는지, 케일라 포스피실이란 젊은 여성을 로저 에일스가 어떤 식으로 성추행하는지 병렬식으로 편집해 미국 사회의 만연해 있는 여성을 향한 전근대적 태도가 잘 드러나 있지만 반면 그들싸움의 분명한 동기, 여성들끼리의 연대감 등이 느슨하게 표현되어 있는 느낌이다. 다큐성격이 강한 영화가 긴 시간을 담는 과정에서 어쩌면 기록하듯이 영화가 전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케일라 포스피실이란 가상의 인물이 폭스사에서 앵커로 성공하려는 욕망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가 드라마화된다. 그 과정은 굳이 보여줄 필요 없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두 실제 인물 그레첸 칼슨과 메긴 켈리의 이야기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이리라.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책에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그간 행해져온 싸움이 정작 많은 소외된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이면에 여성의 전쟁이 '여성'에 한해서 남성에 대항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차별과 불평등, 폭력은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백인 주류사회와 그외 소수 인종 간의 대립, 권력을 지닌 유산자와 그에 고용된 무산자, 이성애자인 주류와 동성애자인 비주류 등등, 모든 차별은 권력을 지닌 이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영화에서 메긴 켈리의 대상 중 백인 운운하는 것만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싸움은 지리하다.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권력을 지닌 이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득권을 쉽게 잃고 싶지 않은 자들은 끊임없이 그들이 지닌 권력을 이용해서 차별을 일상화하고 대물림한다. 또한 그 차별의 대상이 여성조차 여성과 남성의 대립을 벗어나면 또 다른 권력을 갖고 차별을 행하고 갑과 을의 관계로 명칭할 수 있는 불평등과 차별은 사회 곳곳 어디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영화는 남성 권력을 향해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연대를 했을 때 어떻게 승리하는지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모든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방법은 연대밖에 없다.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운동의 새로운 시각, 벨 훅스의 이야기는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이다. 차별받는 모든 이들을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시키지 못한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그레첸이나 메긴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운동은 하나의 사건이고 그것인 현상이 되고 운동이 되고 변화를 가져오려면 여성 그들만의 연대가 아니라 이 사회의 소외되는 모든 이들, 소수의 목소리가 연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