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 필요 없어

by 이성주

가난해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공부를 할 수 없었다는 어떤 이가 있었다. 그는 가난을 극복하고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의대에 진학했다. 좋은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한 그는 소위 잘나가는 진료과목의 담당의가 되어 아름답고 돈이 제법 있는 집안의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작지만 규모를 제법 갖춘 병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사이 아름다운 아내와 딸 둘을 낳았고 아버지를 닮은 총명한 아이들은 공부를 잘 했다. 아이들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부인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외국에 나갔다. 그러다 어느 날 종합검진에서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항암치료와 표적치료를 받았지만 그의 생사는 이제 신의 손에 달렸다. 그는 왜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다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답에 기가 막혔다. 가장 불행한 상태에 있는 자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퇴근길에 선술집에서 거나하게 한 잔 들이키며 껄껄 웃는 소시민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거리에서 웃지않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이 오버랩되었다. 소설 같은 이야기,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드라마도 소설도 아니다.


얼마 전에 유투브의 애니메이션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쥐들 무리에 한 마리의 쥐가 휩쓸려 지나가는 머리 위로 끊임없이 '해피니스'라는 영문 전광판이 번쩍거렸다. 나는 그 애니메이션을 지인들의 카톡에 링크를 걸었다.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큰 감흥은 없는 모양이었다. 유통기한이 이미 정해진 삶을 살고 있는 우린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타인의 삶에 대해서 내 말과 행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지 않는다. 개체수가 늘어나 일정한 수를 맞추기 위해 낭떠러지로 몰려가는 나그네쥐떼처럼 삶도 죽음도 생각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나도 길을 잃은 것 같다. 미로 속에 갇힌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무엇때문에 사람들을 상처입히고 무엇때문에 그렇게 악귀처럼 달려들어 죄를 짓는 건지 알 수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런 건 분명 아닐 거다. 열심히 살아도 결국 똑같은 패를 받는다. '죽음'은 누구나에게 평등하다. 죽음 앞에서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흐뭇하게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죽어라, 타인을 물어뜯고 끌어내리면서 열심히 살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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