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딘버러의 성메리 성당에서 나는 기도했다. 나의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낡고 헤어진 장궤에 내 무릎을 꿇고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코난도일의 집을 지나 스탠딩 코메디 상설극장을 지나 작은 카페에서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셨다. 스타벅스 커피숍이 거의 없는 스코틀랜드의 도시 한 가운데서 나는 노바디였다. 나는 노바디였던 나를 좋아한다. 최초의 해외여행이었던 2003년의 겨울 나는 아이들과 베를린 시내에서 노바디가 얼마나 좋은지 경험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쓸 필요 없이 나의 의지대로 입고 먹고 떠들고. 아이들과 베를린 시내를 걷고 한적한 커피숍에서 코코아와 커피를 시켜 마실 때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최대로 느끼고 있었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이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p110
이 당연한 진술이 내게 와 닿는다. 끊임없이 사람과 사람, 관계와 관계, 현재와 과거가 얽혀 서로를 상처내고 아귀처럼 다투는 한국에서 여행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나를 둘러싼 많은 조건들이 싫었던 것 같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한국의 장년으로서,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수식하는 모든 관형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거 같다. 지금 다시 시작해도 될 것 같은. 김영하의 <여행하는 이유>의 첫 시작은 상해에서 바로 출국당한 사연부터 시작한다. 돌발 상황,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조건이 사라진 상태에서 노바디로서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출국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황당하지만 소설적 장치를 만나는 작가는 나에게도 위로를 준다. 그렇다 수많은 상처들과 시행착오들은 결국 나에게도 글의 소재가 되고 살이 되고 성장을 준다. 과정이란 게 중요한 이유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알 수 없다. 과정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지.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한 ‘파리증후군’과 같은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는 퇴색되고 현재는 과거가 되는 걸 반복하는 게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현재도 화려하게 보려하지 않는다. 나의 시선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보려고 애쓴다. 그러기에 낡고 지저분한 파리나 로마의 거리에서 실망하지 않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웠고 내가 태어난 곳에 과거라는 시간이 지워진 게 안타까웠다. 슬프고 처참하고 보잘 것 없는 과거라도 나는 그것이 갖고 있는 가치를 인정한다. 우린 그 과정을 통해 현재에 있고 현재가 쌓여 미래로 우리를 데려간다. 과거에 듣지 않던 노래를 듣는 이유도 그렇다. 핑클의 ‘now’를 내 뮤직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빠르고 세련된 그녀들의 노래가 유난히 듣기 좋다. 여행은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간을 이동하기도 하는지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다른 누군가 만든 도시의 과거를 현재로 끌어다놓고 다시 그 과거를 훑어보며 나의 현재를 본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의 현재에도 현재라는 시간과 내가 있는 공간이 존재하듯이. 모든 역사가 모든 개인의 역사도 그러하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개인은 역사 속에서 아무 의미 없지만 사실 역사는 개인이 모여 이룬 결과물로 말한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층에 간접 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 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 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하나의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p117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P117
물리적인 여행만이 여행이 아니다. 작가가 읽었다는 <김찬삼의 세계일주>는 나의 유년 시절 거실의 책장에 있던 여러 전집 중 하나였다. 흑백의 사진과 칼라의 사진이 섞인 하드커버의 전집은 나도 좋아하는 책 중 하나였다. 아버지 친구 중 하나가 한국일보에 근무하셔서 아버지는 여러 질의 전집을 사셨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과 라이프 사진집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 집에서 그 책들을 가장 열심히 본 건 아마도 나였을 거다. 세계일주를 다녔다는 작가의 이력에는 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사진 속의 나라를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결혼 후 작은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면서 이뤄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옷가방을 메고 일주일씩 한국의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였다. 결국 나의 여행을 완성한 것은 작가의 말대로 타인의 여행기와 나의 욕망과 실천력이었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는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았던 동유럽을 최초의 해외 여행지로 선택했다. 비엔나의 중앙 묘지에서 만난 베토벤과 브람스의 묘지, 베를린 장벽, 브란덴부르크 성벽, 훔볼트 대학, 카프카가 걸었던 소로, 모차르트 생각 앞에서 마신 비엔나 커피, 다뉴브 강의 유람선, 슬로바키아에서 만난 설경, 그 모든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는다. 그때는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아서 국경을 넘을 때마다 여권 검사를 하던 때였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간 동유럽은 입국과 출국 시에만 도장을 찍어주니 그때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다.
허영과 자만은 여행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라.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p187
이 책에는 여로형 소설이랄 수 있는 오딧세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오딧세이의 이야기 자체가 여정에서 만난 에피소드들의 모음이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물이 성장하고 결국 귀향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장착하게 되는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리라.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서 쇼핑을 하고 사진을 찍지만 그렇게 그러모은 것들의 가치보다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과 나라는 사람이 속한 사회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로 확산되는 결과물에 대한 가치가 더 클 것이다. 그건 나도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리라. 나는 또 여행을 간다. 즐기러 가는 여행이지만 이번에도 무언가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거기서 나는 음식을 하지 않아도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 김영하가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나는 나의 역할을 떠나서 그냥 역할 바깥의 존재로 며칠간 있다가 오면 된다. 앞으로도 여러 형태의 여행이 기다릴 것이다. 현지인처럼 살아보기도 계획되어 있어 내가 잘 모르는 내 나라의 곳곳을 다시 훑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곳의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 여행은 더욱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여행지를 나는 운이 좋게도 두 번이상 방문하고 있다. 국내도 그렇지만 해외도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는 그곳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몇 곳만 밟고 온 내가 어찌 알까. 작가가 뉴욕의 한 공원에서 월가의 시위대 속에서 음식을 먹고 그들의 토론 속에 끼어들었다가 결론은 떠난 이방인인 것처럼 나는 그냥 그들 속에서 잠깐 이방인이지만 노바디로 한국에서의 나와 다른 생활을 잠깐 하다 올 뿐이다. 결국 우린 지구라는 곳에 잠깐 왔다 가는 여행자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