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다시 공모전에 내는 걸 지속하고 있다. 공모전에 떨어지고 나면 며칠씩 앓기도 하지만 곧 다시 일어나서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공모전은 세상에 날 알리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는데 필요한 라이센스이기도 하다. 작가라는 걸 인정받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인 셈이다. 하지만 그 길은 멀기만하다.
많은 청년들이 공모전에 응모한다. 어쩔 때는 그들과 같이 경쟁하려는 내가 뻔뻔한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찬란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과 스토리를 보면 나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그래서 당연하다 싶고 그들의 당선에 쉽게 마음을 접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때는 '왜 이게?' 라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작품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럴 때 내게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부족한 것이있다는 걸 지적한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심 하나가 있다.
문학은 사회 단면을 쪼개서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기도 하고 위로를 하기도 하고 철학적 화두를 던지기도 하고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다. 목적이 무엇이든 문장이나 주제, 인물들이 살아있으며 사람들이 공감하고 인정할 때 좋은 작품으로 생명력을 얻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작품을 쓰고 싶은 열망으로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작품을 구성하고 완성해간다. 한국의 문학은 등단제도와 자비 출판 혹은 출판이 가능한 곳에 원고를 보내 책을 만드는, 세 가지가 작가로 활동하는 길로 알고 있다. 그 중에 등단해서 작품을 인정받고 이후 청탁을 통한 작품 발표로 모아진 작품을 출판해서 작가로 입지를 굳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작가로 인정받고 이름을 알리는 일은 쉽지 않다. 책을 읽는 독자들 중 고급독자가 많아 그들의 눈은 예리하고 출판사의 출판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작품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미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능력은 그래서 박수받을만 하다. 그렇지만 아쉽기도 하다. 우린 시험처럼 신춘문예나 출판사의 신인 문학상에 지원해 일련의 심사과정을 거쳐야 등단할 수 있다. 비슷비슷한 소재, 비슷비슷한 문장력, 그 것들 중에서 날카로운 작품 하나를 선별하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겨울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떨어지는 많은 좋은 작품들의 불운에 대해서 나는 의심하게 되고 안타깝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건 시험이란 제도가 갖고 있는 그의 실력이나 열망이 단 하루의 운에 의해서 좌우되는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문학까지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이다. 그게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 문학가들조차 줄세우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후일담으로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신춘문예 원고를 우연히 발견해 다시 본심에 올려 당선되었다든가, 만년 신춘문예 낙선자였다가 다른 이름없는 곳에 작품이 실려 작가로 입지를 넓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작가로서 성공한 분들에게도 결국은 운이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게다. 우리는 많은 일들에 운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에는 운이 없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능력은 어쩌면 운을 담보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요즘 능력 있음에도 불운해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문우들에 대한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 가야할 길이 먼 내게 던지는 위로와 격려이기도 하다. 일단 운은 노력해서 일정한 수준에 다달아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반짝반짝한 문장을 완성하며 좋은 글을 쓰며 내일 떠오르는 행운의 태양에 또 다시 운을 맡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