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욕망에 대한 진지한 고민

생각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카페 S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아니 그녀의 팔목에 있는 팔찌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팔목은 가늘었고 하얗고 가냘프다. 그녀의 팔목에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화이트, 피치, 아메시스트, 스모크토파즈, 올리브그린, 에머랄드가 순서대로 '차르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하며 그녀의 팔에서 움직였다. 나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과 가냘픈 몸만큼이나 아름다운 뒷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책과 공책을 손에 들고 가방을 어깨에 매고 나가자 한참 그녀가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여전히 그곳에 그녀가 있는 곳처럼. 그리고 그녀의 하얗고 가냘픈 팔은 나의 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전체적인 실루엣이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인지 그녀의 팔만 내 기억에 남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팔목에서 '차르르'했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을 꿰어 팔찌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았다.


어떤 사람을 기억할 때 시그니처처럼 그를 대표하는 '무엇'인가 있다면 그걸로 그 사람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옷을 입는 스타일일 수도 있고 말하는 손짓일 수도 있고 그가 늘 하고 다니던 악세사리일 수도 있다. 그사람이 지나고나면 남는 향기처럼 하나의 시그니처를 갖고 있다면 타인에게 인상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다. 나는 가끔 그런 것에 꽂히는 것 같다. 한 사람의 모습을 인상적이라고 말할 때 이렇듯 그 사람만이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잔상이 큰 역할을 한다. 그날의 나는 그녀의 팔목에 감겨있던 스와로브스키에 꽂혔다. 하지만 나는 결국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을 구매하지 않았고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날의 기억은 내게 남아있고 아직도 '만들어볼까'하는 욕구가 있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보다 왜 그녀의 모습이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기억했다. 그녀의 전체적인 실루엣도 그녀 팔에서 반짝이던 스와로브스키 팔찌도 그녀에게서 향기가 나는 것처럼 나는 모든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왜일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러가지지만 말과 행위만큼이나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멋도 한 몫을 한다. 그건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고 가꿔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스와로브스키 팔찌는 반짝이는 금붙이나 유명 라벨이 붙은 팔찌보다 초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자신에게 잘 어울리게 색깔을 배치해 아름답게 자신의 팔에서 반짝이게 한 그녀의 패션센스가 결국 자신의 멋을 만든 게 아닐까. 색깔의 적절한 배치야말로 자신의 가치를(외모적)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채색이 잘 어울리는 사람, 밝은 색깔이 어울리는 사람, 자신의 피부나 기분 상태에 따라 색깔을 적절히 이용해서 코디네이션하거나 트레이드마크처럼 선택한다면 그는 외모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자신만의 멋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칼라 컨설팅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


어쨋든 한 사람의 영상이 오래 각인된 이유는 내 안에서 그 사람의 멋이 인상적인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내가 그녀를 동경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젊음이든 그녀의 아름다움이든 그녀만의 색깔이든. 부러움을 자아내게 하는 건 내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 발현된 열등감일 수도 있고 그녀가 정말로 멋진 여성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사람이 사람에겐 자극이기도 하고 스트레스기도 하다. 자극을 받으며 나만의 색깔과 멋을 찾아간다면 그건 열등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리라. 그저 내 자신의 모자란 점만 탓한다면 스트레스는 극대화되고 늘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부정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살면서 아주 사소하고도 쓸모없는 욕망도 사실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나를 앞으로 더 나가게 할 수도 있고 우물 속으로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나에게 잘 어울리고 나를 돋보이게 하는 색깔을 찾고 싶다. 멋지게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나만의 향과 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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