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젊은 작가 수상집을 읽고
책 읽는 우체통
관음증은 누구나 조금씩 있는 정신병적 증상이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영화와 소설로 그 욕구를 해결하고 병증이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타인의 삶을 훔쳐볼 것이다. 한때 조해일의 소설 '겨울여자'가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에서 여주인공 이화는 늘 연애편지를 보내던 요섭의 자살 사건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거부하지 않기로 한다. 요섭은 매일 이화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요섭은 관음증 환자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의 행위는 병적 집착을 보여주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당시 소설은 인기가 있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이화는 요섭의 죽음 이후 파격적인 삶을 산다. 모든 허례와 가식을 벗어버리기로. 그것이 온통 남성위주의 폭력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는 문제가 많다. 여성이 구원자로서의 이미지를 구현시키는데 굳이 성적 해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소설은 대중적 인기는 얻었지만 소설 속에서 구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은 병증이고 그건 불법이다. 그럼에도 우린 타인의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투사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다. 소설은 인간의 관음증을 병증으로 만들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볼 수 있는 좋은 도구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 읽는 게 좋다.
올해도 예외없이 '젊은 작가 수상집'을 샀다. 함께 창작 작업하는 친구들과 읽고 합평하자고 선택한 책이었다. 올해의 신춘문예 수상작품을 읽고 이전 수상작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배울 것도 있었고 인상적인 것도 많았다. 다른 사람의 삶, 비록 소설로 써진 허구의 삶이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소설 속 인물은 문제적 인간이다. 세상에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다만 세상을 돌아다니는 실제의 인물은 자신이 문제적 인간인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우린 소설을 통해 문제적 사회와 세계관과 인물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자신을 투영한다. 소설을 통해서 사회를 읽기도 하고 아픈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올해의 대상은 전하영 작가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이다. 소설의 제목은 1985년 필립 가렐의 영화 제목에서 차용해왔다고 작가는 주석에 달았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소설과 영화가 맞닿은 지점은 없다. 전하영의 소설은 묵직하다. 젠더 이슈에서 여성을 향한 침묵의 폭력과 예술이라는 이름에서 자행되는 성폭력, 성추행, 부와 계급이라는 권력으로 행해지는 나른한 오만과 여성을 소비하는 남성을 두 개의 시간대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게 한 것은 아름다움에 현옥되어 스스로를 열등하게 느끼는 여성의 자기 함몰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예쁜 친구를 두었을 때 얻게 되는 프리미엄은 타인의 관심이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인간의 속성상 자신이 갖고 있는 프리미엄 중 외모의 우월함만큼 견고한 권력은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지고 침략당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가끔 간과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을 함부로 꺾는 점령자들에 의해서. 소설은 담담하게 젊을 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와 예술가를 자처한 우울하고 고뇌에 찬 젊은 교수 장피에르와 예쁜 친구 연수, 그리고 화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펼쳐놓는다. 내 얘기 같기도 한 소설 속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자괴감과 분노와 허탈함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겪었을 이야기, 누군가도 함께 느꼈을 감정들, 소설이 끝나고나서도 한참 여운이 남는다. 인간이 복잡하기에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기 어렵고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화자인 내가 현재 연구소의 말단 직원이 꽤 나와 잘 어울리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연구원인 '그'가 "스물한 살짜리를 유혹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에요."라는 말에서 퍼뜩 정신차리게 된다. 유복한 집안에서 곱게 자라 학위를 받고 꽤 지적이고 유능한 남자가 브라질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브라질의 건축에 심취하게 되었다는 꽤 고급스런 대화에서 장피에르를 연상하게 되고 나이 어린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 쉽다는 말 한 마디에 그 역시 뻔한 연구소의 다른 꼰대들과 다름 없다는 사실, 그것이 보통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불평등은 계급뿐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바이러스처럼 침입해 어느 곳을 막론하고 사람을 병들게 하는데 우리는 병든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수상작품들을 읽다보면 매력적인 작품과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 대부분이 점점 심해지는 소외되는 것들, 개선되지 않은 환경, 여전한 편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조심스럽게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하려는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그 이야기들이 겉도는 듯한 느낌,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서술이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며 이들의 열정을 다시 확인한다. 소설가로 사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한 사람의 삶을 그려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인물을 통해 독자들과 대화하며 함께 고민한다는 것도. 올해의 소설도 역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작년의 소설에서 다룬 이야기들이고 십년 전에도 다룬 이야기이다.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서 점점 무기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