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들은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었다. 환경 문제, 전쟁 문제, 디지털시대에서의 삶의 문제, 소설, 이들은 각각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 다른 시대를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적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한 목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살 것인지,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집이 두 채 있다. 하나는 낡고 비싼 집과 하나는 조금 더 저렴하지만 새집이다. 경제적 이익을 따지고 보면 낡았지만 비싼 집에는 이유가 있다. 교통이 편리하다든가 교육시설이 잘 되어있다든가, 아니면 인프라가 잘 갖춰 있다든가 곧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집일 것이다. 경제적 손실을 따지길 좋아하는 사람은 낡았지만 비싼집을 당연히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통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아이가 아직 어려서, 차가 있으니까 새집이 훨씬 쾌적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새집을 살 수도 있다. 결국 그건 선택의 문제이다. 집을 산이후에도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그 집을 고칠 것인가, 그냥 살 것인가. 그때 그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집을 팔 때일 것이다. 미래에 얻을 수익을 모두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허락하는대로 자신의 집을 원하는대로 수리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다. 집을 살 때 가장 먼저 생각할 일은 그 집에 살며 가족이 모두 행복할 것인가를 먼저 따지는 게 제일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행복의 제 1 순위에 경제적 이익을 1순위로 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위해 선택했던 행위들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 집 사는데 무슨 다른 사람이 불행할 거라 생각한다면 집을 고칠 때 나오는 쓰레기나 재건축에 따른 환경오염 등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환경 문제는 남의 집 병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는 현재를 살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고 듣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으며(?)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조금씩 저당잡히라는 말을 듣고 산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볼 때, 그럴 때 뿐이다. 그럼에도 실제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면서 살고 있는지는 의문 투성이다.
최근에 읽은 책의 공통점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제언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각각 서로 다른 주제를 갖고 다룬 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우리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비심을 갖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덜 소비하고 내 운으로 얻은 성공의 결과물을 타인과 나누고 그런 것들이 가능하도록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당장의 손쉬운 방법이나 쾌락보다는 조금 늦게 가는 걸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주변을 더 사랑하라는 말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모든 책들이 말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편리함을 보면 부럽다. 그들이 먹는 음식의 높은 퀄리티와 그들을 꾸미고 있는 외부의 장식품들, 그들이 사는 쾌적한 환경들이. 게다가 그들이 완벽해 보이는 배우자와 자식까지 두었다면 그들은 사람들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우리가 알지 못하지 않는가. 모든 것을 가진 이가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하는 갈증을 호소하고 있을지도. 더 짜릿하고 완벽한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성정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가족 구성원과의 단절이나 타인과의 속깊은 관계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수도. 매일밤 불면으로 잠을 청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그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행복은 'better than more'라는 말이 있다. 사실 우리가 어제보다 오늘 낫다면, 내일이 오늘보다 낫다면 행복할지 모른다. 'the best'나 'the most'가 아니라.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늘 불안감을 안고 산다고 한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마르고 배가 고픈 것은 최고를 꿈 꾸기 때문일 것이다. 최고는 없다. 그보다 더 높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다섯 권의 책에서 공통으로 발견한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주제 앞에서 왜 우리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궁금하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 앞에 그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삶, 우린 살고 있지만 우리가 죽어가는 걸 모르는 게 답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 수명을 연장한다고 해서 죽는다는, 삶이 유한하다는 명제가 거짓이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