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

사색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2000년대 초 나는 우연히 사진을 접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싸이월드를 장식하면서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더니 사람에게 어떤 일에 맹렬하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사진을 배우겠다고 생각한 건 아주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된 일이었다. 그때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돈을 모아 카메라부터 샀다. 어디서 사진을 배울지 몰라 여기저기를 알아봤고 나는 사진이다,라는 책을 쓴 김홍희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 밑에는 사진을 배우는 일군의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들 무리에 끼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사진을 배웠다. 매주 사진 수업에서 합평을 받기 위해 일주일 내내 통도사와 장생포를 찾았다.(왜 거길 특정해서 찾아갔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어쩌면 특별한 것은 옛 것, 동양적인 것, 불교적인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졸업작품전을 했다. 나는 사진을 잘 찍는 줄 알았지만 나보다 잘 찍는 사람들은 훨씬 많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욕심이 생겼다. 사진을 전공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꽤 유명해지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시를 쓰는 일은 지지부진했다. 등단을 했지만 내 시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시를 쓰면서 시와 비슷한 형식의 말걸기를 하는 사진에 빠졌다. 그러다가 서울로 이사를 했다.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우연히 방문했던 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미군 위안부라고 말하지만 미군 성접대부라 불리웠던 분들이었다. 한국 사회는 딸들의 희생으로 이만큼 부강해졌다고 하면 지나칠까. 사람들은 한국의 발전이 높은 교육열과 빨리빨리 근성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미화를 벌어들였던 그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딸들은 공장에서 가발을 만들었고 지퍼를 만들었고 운동화를 만들었고 옷을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인에게 몸을 팔아서 외화를 벌어들이기까지 했다. 장남과 아들의 출세를 위해서 딸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야 했다. 할머니들을 만나 그분들이 왜 그 삶을 살게 되었는지 들었다. 그들은 극악스럽게 살았고 체념하며 살았다. 시간이 지나며 그분들과 친해지며 자연스럽게 그분들은 삶을 내게 이야기했고 그들의 사진 찍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그분들의 사진을 찍었고 그분들의 삶을 경청했다.



그냥 보통의 젊은 처녀였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처가 많다고 생각했던 그분들이 의외로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다는 예상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을 억압했던 건 오히려 미군들보다 함께 살았던 한국인들인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가족 부양의 책임을 졌던 그들을 부끄러워한 가족들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여자들인 그들이 그저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그들은 버림받기를 반복했고 불안한 미래를 그려야 했다. 그들의 삶 구석구석에 미군에게 살해당한 윤금이가 있었고 해외입양보낸 슬픈 사연의 어머니가 있었고 한국이 고향인 미국 국적의 혼혈 입양아가 있었다. 그들과 만나 대화하며 찍었던 사진들, 그렇게 모여진 사진들이 어느 날 사진 전시회를 만나게 되었다. 사진 전시회는 정말 의미있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나의 준비 없음으로 해서 큰 이슈를 남기지 못했다. 나는 사진전이 끝나고 후회했다. 사진전을 통해서 내가 유명해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전시 기획자와 전시자인 나 사이의 소통 부재와 전시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서 지금도 내겐 후회와 상처로 남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 어떤 일이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칠 땐 그만큼의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 프로필 사진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카메라를 든 내 모습이다. 비록 정면으로 얼굴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는 열정이 넘쳤다. 내가 사진 속에 담았던 할머니들이 한분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슬프다. 하지만 오래 만나지 못하면서 점점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할머니들의 영정 사진을 찍고 액자에 담아 선물로 드리고 지금은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지만 나는 사진으로 할머니를 만났던 그때가 참 그립다.

어떤 만남은 필연이다. 그리고 그 만남들은 에너지를 동반한다. 나는 그때 에너지를 더 많이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후회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직 때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살다보면 꼭 해야 할 말이지만 지금은 삼켜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어쩌면 그때의 만남과 이벤트가 때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발화하는 말은 훨씬 효과적으로 세상에 전달되지 않을까. 아마도 그때는 전시기획자나 전시를 하는 사람도 훨씬 더 많은 에너지로 세상을 향해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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