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쿤데라
어릴 때 나는 늘 집을 떠나고 싶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날 사랑하는 걸 알았지만 늘 부족했고 분위기는 경직됐으며 나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 속으로 숨기는 걸 더 많이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어디선가 내 부모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는 진짜 내 집으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나는 현실적인 면도 강한 편이라 그건 내 상상일 뿐이라는 걸 언제나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내 부모님이 날 학대하거나 교육기회를 빼앗거나 경제 활동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어서 조금은 나태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때는 행복하지 않았다. 순종적인 엄마와 권위적이고 무서운 아빠가 싫었다. 모든 아이들이 한때 부모에게 반항하고 반목하는 시기를 거치는 것처럼.
그런데 온전히 내 가정을 꾸리고나서도 나는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현실은 언제나 갑갑했고 나는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었으며 다른 곳에 가면 뭔가 하나를 뚝딱 완성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도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는 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 같다.
사람들을 만나서 격정적으로 언쟁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몰두해서 놀거나 돌아다닐 때 나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말처럼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고 보낸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사람들과 토론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집에서 있는 나보다 밖에 있는 내가 더 행복했던 걸까. 늦은 저녁까지 시계를 보지 않고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더 행복했던 것일까.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삶에서도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들, 어쩌면 나도 거기에 속해 있었던 건지 모른다. 과중한 책임, 결과를 촉구하는 사회, 일등만을 기억하는 사람들, 남을 밟아야 올라설 수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젊음, 쫓기듯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우릴 행복하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한국에 대해서 좋은 평을 들을 때마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안도감으로 떠나지 않을 이유 하나를 찾은 것 때문에 행복하다. 다시 주저앉는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내가 행복하다고 긍정에 대한 메시지를 스스로의 뇌에 주입한다. 그러면 행복해지기라도 하듯이. 사실 떠나봤자 갈 곳이 없다. 또 떠난다는 것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떠나서 잠깐 현실을 잊을 수는 있어도 현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sns를 보면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도 떠나 새로 정착한 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뿐이다. 그곳은 곧 떠나고 싶은 공간이 될 것이고 벗어나고 싶은 시간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현재라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강박적이고 조금은 힘에 부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다음 그 때를 보낸 우리의 용기가 아니라 그곳과 그 시간을 버텨낸 인내 때문이다.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밀란 쿤테라는 어쩌면 유럽이란 대륙에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면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반쪽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영원히 떠나는 것은 놀라운 선택과 용기를 전제로 한다. 그들 모두를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가방을 싸는 것은 가방을 풀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떠나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방랑자처럼 가방을 싸고 떠나지만 우리가 돌아올 곳이 없다면 떠남이 온전히 떠남이 아닐 것이다. 삶이 언제나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잠시 떠나는 것은 몸이 떠나기도 하지만 마음이 떠나는 것도 포함된다. 피곤한 일상에서 떠나듯이 피곤한 관계에서도 잠시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 어차피 우리가 맺는 관계 중에서 끊을 수 없는 것들이 주는 피곤함이 가장 크니까 굳이 그걸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과 있을 때 우리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에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서 무책임한 건 아니다. 그저 잠시 거리를 두는 것, 현재라는 내 삶에서 잠깐 벗어나는 것, 현재에 내게 얽혀있는 관계를 잠깐 쉬는 것, 그래야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