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싸움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싸움을 피해야 한다. 감정적인 사람은 의도치 않게 타인과 말싸움을 할 때가 있다. 불평등과 불합리와 부조리에 가만있을 수가 없다. 약간 감정적인 나도 때로 말싸움을 할 때가 있고 때로는 그 싸움에서 이길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실제로 이긴 것이 아닐 때가 많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상대방이 그만 하자고 하면 싸움은 끝나는 거다. 싸움에서 이긴 것이 기쁘지 않다. 나는 상대를 찾아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상대는 내 사과를 받아준다. 이런 상황은 반대가 되기도 한다. 내가 논리에서 밀리거나 사실을 적시하지 못했을 때 상대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나는 수긍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도 찜찜한 것 같다. 도긴개긴이라고 내가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들은 대체로 사람에게서 상처받는 걸 싫어하고 상처주기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마음 근육이 단단한 사람과 싸우는 건 쉽지 않다. 아무리 공격해도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당초 그들은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다. 평상시에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드러낸다 하더라도 목소리 톤이 변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쌈닭처럼 굴지 않는다. 그들은 또 사람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원래 그러려니 마음의 동요가 별로 없다. 세상의 온갖 부당함이나 부조리에 대해서 인간이 만드는 것들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오지랍도 없다. 각자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목소리가 크지 않고 논리적인 경우가 많으며(그렇게 보인다) 그렇지 않더라도 질 싸움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다. 그들도 타인에게 상처입히지도 않고 상처받지도 않는다. 그들은 때로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감정적인 사람들에게 애매한 태도의 사람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싸움을 절대로 걸면 안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봐도 착한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들은 싸울거리를 만들지 않지만 조금은 답답한 면이 있어서 이유 없이 목소리 큰 사람에게 당할 때가 있다. 그런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자기 자신의 밑바닥만 보여지기 때문이다. 또 너무 나쁜 사람과는 싸우지 않는 게 좋다. 나쁜 사람을 이기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이다. 그들은 어디에 칼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혀에 혹은 주머니에 혹은 뒷모습에 숨기고 있을 수 있다. 그들은 거짓으로 무장하고 악랄하게 나의 허점을 캐려고 든다. 그들은 비겁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원래 싸움이란 이기는 게 전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맞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싸움 후에 남는 것을 보면 그게 답이 아닌데도 이기는 게 목적인 사람은 싸움 후를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이기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다. 그들에겐 싸움의 정도는 없다. 그들은 상대를 상처입히는 게 목적일 뿐이다. 그것이 의미가 없음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전리품처럼 싸움 후에 얻게 될 것에만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이 부질없는 짓을 했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모를지 모른다.
나쁜 사람을 이기는 건 어렵다. 그들의 혀는 상대의 마음을 상처주고 그것이 죽음까지 몰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들은 거짓말을 예사로 한다. 없는 일도 지어내고 협박도 능숙하다. 그들은 손에 칼을 쥐고 있지 않아도 어떻게 죽음으로 몰고 갈지 잘 안다. 무기를 쥐고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큼이나 자신이 가진 온갖 재능을 활용해 사람을 나락에 빠트릴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절대로 돌아서야 한다. 그런데 우린 그런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쁜 얼굴을 숨기고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혀는 거짓말을 잘하듯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의 웃는 얼굴이 때로 감정적인 사람보다 더 친절해 보이기까지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싸움을 걸어서도 안되고 그들이 싸움을 걸어도 피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사는 걸 피할 수 없지만 싸움은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싸움에 최적화된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 싸움을 건다. 그래서 나쁜 사람을 이기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종이 한 장은 쉽게 찢어지지만 여러장이 모이면 찢을 수 없다. 말하고 보니 그것도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낀다. 어렵지만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그것을 희망한다.